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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터 회고록 「신의를 지키며」…국내 독점 전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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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11월17일, 「호메이니」는 「미국의 스파이가 아닌」여자와 혹인 인질들을 석방하겠다고 발표했다. 우리는 즉각 이란측이 단 한사람의 인질이라도 재판에 회부하거나 처벌을 한다면, 이란은 미국의 군사보복을 포함해 심각한 결과를 각오해야 할 것이라는 내용의 강경한 경고성명을 발표했다.
우리는 13명의 여자와 흑인만을 석방하겠다는 이란측 발표내용을 착잡한 심정으로 검토했다. 인질이 일부나마 석방된다는 것은 반가운 소식이지만 「호메이니」는 아직 억류중인 인질이 스파이들이며 이들은 재판에 회부돼야 한다고 주장하고있어 그의 태도는 살얼음판을 걷는 듯 했다. 「호메이니」는 모호한 말만을 했기 때문에 아무도 그의 진짜 의도를 가리기가 어려웠다.
페르시아만의 모든 지역이 이란혁명의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발생한 정치 테러는 미국을 또 다른 위기로 몰아 넣었다. 일단의 과격파들이 메카의 회교사원으로 쳐들어가 신성모독 적인 행동을 자행했다.
인도의 한 라디오방송은 메카사원 공격에 미국인들이 개입돼 있다고 허위 보도를 했다. 이 바람에 파키스탄에선 폭도들이 미국대사관에 불을 질렀다. 이 북새통에·미군 상사 한 명이 목숨을 잃었다. 파키스탄의 「모하마드·지아·울하크」대통령은 곧바로 군대를 보내 우리 대사관 직원들과 재산을 지켜주었다.
「지아·울하크」대통령은 나와 미국인들에게 개인적인 사과를 해왔고 파키스탄 정부는 모든 피해를 보장하겠다고 약속했다.

<호옹 마음 알길 없어>
「호메이니」가 미국인질을 재판에 돌려 처벌하겠다느니 하며 계속 신경을 건드리고 있는 가운데 터져 나온 사우디아라비아와 파키스탄에서의 폭력사태는 세계평화에 중대한 위협이 아닐 수 없었다. 나는 다시 동맹국 지도자들에게 전화를 걸어 그들의 지원을 요청했다.
영국의「대처」수상은 강력하게 그리고 전폭적으로 미국입장을 지지했다. 「대처」는 우리가 취한 모든 조치들을 지지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다짐했다. 프랑스의 「지스카르」대통령은 각의 에서 이란 규탄이 결의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독의 「슈미트」수상은 유럽의 세나라 지도자들 중 가장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그는 다만 미국입장을 지지하는 성명을 다시 한번 발표하겠다고 만 대꾸했다.
이집트의 「사다트」대통령은 아주 적극적이어서 만일 미국이 군사력을 동원해서 이란을 징벌하기로 결정한다면 이집트는 군사원조를 포함한 모든 지원을 하겠다고 제의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유엔이나 다른 국제기구에서 이란 측에 대항하도록 아랍국가들을 설득시키겠다고 약속했고 일본의 「오오히라」 수상은 일본이 무슨 추가지원을 하는 게 좋겠느냐고 물어왔다.
추수감사절 다음날인 11월23일, 나는 주요 참모들을 캠프데이비드로 불렀다. 「먼데일」 「브라운」「밴스」「브례진스키」「존즈」(합참의장)「터너」(CIA국장)「조던」「파월」 등이 캠프데이비드 산장에 모여 인질사태를 집중적으로 논의했다.
우리는 이 자리에서 만약 미국인질에 대한 공개재판이 시작된다면 미국은 즉각 이란과의 모든 교역을 중지하기로 결정했다. 우리는 이란의 상세한 지도와 이란해역 주변에 관한 각종 자료를 놓고 검토를 거듭했다.

<주변국서 반미열풍>
내 판단으로 모든 선박의 이란출입을 저지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이란의 각 항구 주변에 기뢰를 부설하는 것이었다. 미국은 기뢰부설 작업을 지체없이 실시할 능력을 갖추고있으며 이 작업은 미군병사의 생명에 별다른 위험성도 따르지 않는 일이었다. 게다가 이란 또는 이란을 지원하는 국가들의 능력으로는 부설된 기뢰를 효과적으로 제거한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미 해군함정을 동원해서 이란 해역을 봉쇄하는 것도 기뢰부설 만큼이나 효과적이긴 하겠지만 해상을 봉쇄한다는 것은 자칫하면 미국함정과 다른 나라 선박들간의 계속적인 충들을 야기시킬 위험이 따르는 일이었다.
만약 외국선박들이 미 해군의 해상 봉쇄 선을 돌파하려고 시도한다면 그런 선박들은 피해를 보거나 경우에 따라선 격침 당할 우려도 없지 않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또 인질이 처형되거나 처벌을 받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대처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인질이 처벌받거나 처형될 경우 나는 이란에 대해 직접적인 군사공격을 감행할 준비를 이미 세워 놓고 있었다.
우리는 이란의 정유공장과 이란 내에 있는 전략적 주요목표 물들을 찍은 첩보위성 사진을 면밀히 검토했고 이란 지도자들까지 신속히 응징할 수 있는 계획을 짜 놓았다.
나는 「호메이니」에 대한 미국의 경고메시지가 미국의 주요 무역 강대국들에도 동시에 전달되도록 조치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방들이 인질을 처벌하려는 「호메이니」의 위협을 줄이는데 보다 적극적으로 협조하도록 유도하기 위해서였다.
물론 나는 다른 국가들이 페르시아만으로 이어지는 국제수노가 봉쇄되는 것을 바라지 않고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우리는 이란 지도자들과의 직접적인 협상채널이 없었기 때문에 미국의 단호한 경고 메시지를 몇몇 우방들로 하여금 이란에 전달하도록 요청했다. 이에 따라 많은 세계각국의 지도자들도 미국측 메시지 내용이 허세가 아니라는 점을 잘 알게 되었다.
이란의 과격파들은 ▲「샤」를 이란에 들려보내 재판을 받게 해야 하고(이 경우 「샤」는 재판이 끝나자마자 처형될 것이 뻔하다) ▲미국은 「이란 국민에 대한 범죄사실」을 전세계에 사과해야 하며 ▲이란측이 입은 재정적 손실을 보상하고 「샤」의 재산을 이란에 넘겨주어야 한다고 요구하고 나섰다.
나는 이같은 납치범들의 요구 중 「어느 하나도」심각하게 고려해 본적이 없었다.
그렇게 한다는 것은 미국의 명예에 큰 오점을 남기는 결과가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분쟁해결 원칙 마련>
그러나 인질사건이 발생한 첫 1개월 동안 나는 「밴스」국무와 함께 이란과의 분쟁해결에 관한 미국측의 최종적인 기본원칙을 몇 가지 결정해 놓고 이 문제를 「발트하임」유엔사무총장과 협의했다.
만일 인질의 신변에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는다면 미국은 국제위원회가 미국과 이란 쌍방의 주장을 조사하도록 허가하고, 이란측이 「샤」가족의 재산에 대한 청구권을 미국 법정에 제소할 수 있도록 보장해주며, 미국과 이란간의 기존 법적 계약을 존중하고, 외교문제는 국제법 및 관습에 따라 처리한다는 원칙을 세워놓았던 것이다.
우리는 「발트하임」에게 이러한 미국의 원칙을 이란 측에 정확하게 전달해 주도록 요청했다.
우리는 또 인질문제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와 국제사법재판소에도 제기했다. 이는 이란을 규탄하고 있는 국제여론의 지지를 최대한 과시하고, 장차 있을지도 모를 재산문제 해결에 법적 근거를 확보하기 위한 포석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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