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시장 개혁엔 좌우 따로 없는 독일 … 슈뢰더 이어 메르켈도 노조 설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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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슈뢰더(左), 메르켈(右)

노동시장 개혁은 어렵다. 기득권을 쥔 쪽이 있기 때문이다. 노동조합이란 강력한 무기도 있다. 표에 목맨 정치권은 노조 공세에 휘둘리기 십상이다. 그래서 정부 역할이 중요하다. 이념이나 정치논리에 치우치지 않은 원칙을 세우고 흔들림 없이 기득권 계층과 기업을 설득해야 한다.

 오늘날 탄탄한 독일 경제를 만든 밑바탕으로 꼽히는 ‘하르츠 개혁’이 대표적이다. 독일은 1990년 통일 후 실업률 급등과 복지지출 증가로 저성장 함정에 빠졌다. 그러자 사민당과 녹색당으로 이뤄진 진보정당연합의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가 2002년 폴크스바겐의 이사 페터 하르츠를 전격 발탁해 경영계·노동계·학계 등으로 이뤄진 15인 전문가위원회를 구성토록 했다. 하르츠 위원회는 2002~2005년 4건의 노동시장 개혁법을 잇따라 내놓았다. ‘노동 없는 복지는 없다’는 하르츠 개혁은 ▶비정규직 채용 규제 완화 ▶실업자의 재취업 지원 ▶‘미니잡’이라는 생계형 창업 지원 등의 내용을 담았다. 그러나 노동계의 저항은 거셌다. 그 바람에 슈뢰더 총리는 2005년 총선에서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이끄는 우파 기민당 정부에 고배를 마셨다. 그럼에도 메르켈 정부는 슈뢰더 정부의 노동시장 개혁안을 수정 없이 그대로 물려받아 추진했다. 그 결과 독일 경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와중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한국 노사정위원회의 표본이 된 82년 네덜란드의 ‘바세나르 협약’을 이끌어내는 데도 뚝심 있는 정부의 역할이 컸다. 사용자협회와 노동총연맹이 체결한 이 협약은 네덜란드에 시간제 근로를 확산시킨 시발점이 됐다. 시간제 근로자에게도 각종 사회보험 혜택을 주고 임금체계도 성과에 따라 주도록 고치는 내용이었다. 그러자 기존 정규직 노조가 들고 일어났다. 그러나 네덜란드 정부는 “노동자를 시장으로부터 보호할 게 아니라 적응하도록 도와주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정책기조를 굽히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노조나 사용자가 집단으로 저항하면 정부는 여론을 동원하거나 임금과 사회보장급여의 연계제도 폐지와 같은 수단으로 노사를 압박했다. 시간제 근로가 확산한 덕에 한때 ‘네덜란드 병’으로 불리던 만성 고실업이 치유됐다. 협약 이전 50% 안팎이었던 고용률은 현재 75%로 껑충 뛰었다. 네덜란드에선 시간제 근로자 비중이 40%에 육박한다. 변호사·의사까지 시간제 근로를 하는 사례가 흔하다. 경기가 부침을 해도 노동시장이 유연하다 보니 회복도 빨라졌다.

박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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