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깊이 읽기] '한국사회 압축파일' 이건희 바로 보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3면

이건희 시대
강준만 지음, 인물과 사상사, 1만2000원

"이건희는 한국의 압축형이다. 한국이 전근대-근대-포스트근대가 동시에 공존하듯이 이건희에게도 세가지가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그의 포스트모던 특성이 디지털 시대의 경영에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가설은 가능하며, 이는 앞으로 집중적인 연구대상이다."(125쪽)

중립을 유지하려는 자세부터 눈에 띠는 이 인용문이야말로 '이건희 시대' 서술의 전체 분위기다.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에 대한 평가를 둘러싸고 한국사회에 형성된 일방적 지지와 일방적 반대라는 양극단을 배제하고 '실물크기의 이건희'를 바라보려하기 때문이다. 흥미롭게도 저자는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강준만 교수. 성역없는 실명(實名)비판의 장을 열었던 '저격수'가 이번에는 이 회장의 비평에 나선 것이다.

실물크기의 이건희를 보기위해 강교수는 스스로 "한국인 대다수가 중독돼 있는 정치 중독에서 벗어나려 했다"고 털어놓았다. 선입견에 따른 독단를 삼가겠다는 것이다. 또 역지사지(易之思之)의 원칙에 따라 삼성 입장에서도 서 보고 그 반대자들의 입장에서도 서보면서 균형을 잡겠다는 선언도 곁들이고 있다. 강교수는 이런 작업을 '도전'이라고 표현했지만, 평가와 결론이 꽤나 우호적이다.

"이건희 모델이 기업들은 물론 국가 차원의 이상적 표준이 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그 모델의 정체를 살펴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건희를 중요한 사회적 화두로 삼아야 할 필요는 그 때문이다. … 이건희는 기존 경영학의 분석대상으로 머물 수 있는 인물이 아니다.그는 사회학적 심리학적 분석 대상이 될 가치있는 인물이다. "(머리말)

이에따라 이건희의 칩거 경영 스타일을 '코쿤(누에고치)기질'같은 심리적 분석을 하는가 하면, 특유의 제왕적 카리스마와 소유지배구조 논쟁까지를 거침없이 다룬다. 서울대 백낙청 교수에서 정신과의사 정혜신씨에 이르는 이건희에 대한 기존 평가에도 섬세한 눈길을 주고 있다. 모두 5개장에 딸려있는 참고문헌의 방대한 양은 이건희 실명비평에 들인 공력을 암시해준다.

이건희에 대한 호의적 평가가 혹시 '이적행위'로 받아들여져도 문제없다는 식의 자신에 찬 서술도 주목거리. 때문에 이 책은 '부드러워진 강준만'을 엿보는 재미도 선사한다. 우리 사회의 극심한 불신과 이전투구는 사람에 대한 무시에서 오는 인과응보라는 것, 따라서 양극단을 피한 중간지대를 키우자는 제언이 담긴 '맺는말'이 인상적인 것은 그 때문이다.

조우석 문화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