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詩)가 있는 아침 ] - '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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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황인숙(1958~) '비' 전문

아, 저, 하얀, 무수한, 맨종아리들,
찰박거리는 맨발들.
찰박 찰박 찰박 맨발들.
맨발들, 맨발들, 맨발들.
쉬지 않고 찰박 걷는
티눈 하나 없는
작은 발들.
맨발로 끼여들고 싶게 하는.



이 도시에도 나무가 자라고 꽃이 피지만, 일상을 통해 자연의 싱싱한 몸놀림을 실감하기란 쉽지 않은 터. 그럴 때, 땅으로 내리치는 빗줄기들이 바로 그런 느낌을 준다. 반가움이 커서 그 빗줄기는 거두절미하고, 하얀 맨종아리가 되어 반짝인다. 그 비는 사람의 맨발들이 되어 내리고 걷는다. 그 속에 진짜 사람 맨발도 있다. 빗소리와 사람 발걸음 소리가 한데 '찰박 찰박' 울린다. 비의 모양을 시가 그대로 닮아 신난다.

박덕규<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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