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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9화 육사졸업생들 (79)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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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합방 전에는 최강의 의병장이었고 합방 후에는 김좌진 장군과 함께 우리 항일무장 투쟁의 양대 주류를 이루었던 홍범도 장군 (1868∼l943)은 조선군 하사였고 사냥꾼이었다.
평남태생이지만 갑산일대 한·만 국경지방에서 근무하고 사냥하면서 체력을 단련하고 지리를 익혔다. 배운 것이 없어 한문은 전혀 몰랐고 겨우 한글을 터득한 정도였다.
그래서 누가 한문 편지를 보내면 『이놈이 나를 놀리는구나』하면서 찢어버렸고 한글 편지가 오면 대견스레 부하들 앞에서 큰 소리로 읽으면서『 역시 언문이 좋아』했다는 일화가 있다.
그러나 그는 심지가 있었고 못 배운대로 그 나름의 철학과 세계를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군대가 해산되고 각지에서 의병이 궐기하자 홍범도 장군은 평안도 일대의 사냥꾼과 동료군인·광부들을 끌어 모아 기병했다. 사냥 포수들이 많아 비교적 무장도 잘 된 편이었다.
일본인 초소나 관서의 피해가 계속되자 일부대가 내습했다. 천부적인 감각과 작전의 지모를 겸했던 그는 미리 유리한 길목을 지키고 있다가 이를 전멸시켰다.
분개한 일본이 정규군 1개 중대를 보내 홍장군의 포수대를 토벌하려 했으나 이것 역시 선제기습을 당해 도중에서 완전히 궤멸되어 패주하고 말았다.
천하대국이던 청나라와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모두 이겨 세계 열강의 대열에 들어서 있던 일본으로서는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이에 조선 주둔군 동북수비대 사령관「마루이」(구정)소장은 휘하의 정예 보병과 기병을 투입하여 토벌케 했다. 그러나 홍범도 부대는 이미 잠적하고 없었다. 이처럼 북변일대에 신출귀몰하던 포수대는 당시 4백여명 이었다고 한다.
산 속에 숨어있던 이들은 19l0년 만주로 건너가 봉오동을 기지로 하여 수시로 국내에 진공해 들어왔다.
일본군 초소를 박살내고 관청을 습격하고 친일분자들을 잡아 혼내주고 처형하곤 했다.
전투 횟수나 승률에 있어서 그는 독립군 중에서 단연 우세했다. 그래서 그의 세력은 점점 커져 3·1운동 후에는 주변의 한인 부대들을 규합하여 대한독립군이라는 당당한 무장부대를 형성하기에 이르렀다.
사령관은 함경도 출신의 최진도선생이었고 홍장군은 그 밑에서 연대장이 됐다. 그의 예하에는 5개 중대가 있었다.
대한독립군은 무기도 쉽게 구입할 수 있었으나 배신자와 고발로 미수로 끝났다. 자금은 함북 회령의 조선은행 지점에서 문도 용정의 조선은행 지점으로 송금되는 15만원이었다. 호송하는 경찰과 헌병을 사살하고 전액을 탈취하여 시베리아에 가서 그 돈으로 기관총·소총·권총을 사들였으나 일군에 적발, 압수되고 말았다.
그후 병력을 늘리고 무장을 강화하자 1920년 6월 드디어 일본군의 대규모 공격을 받게됐다. 홍범도 부대 뿐만 아니라 북만의 김좌진 부대도 그 때 시베리아에서 무기를 대량 구입해오자 일본이 이를 탐지하고 우리 독립군이 강화되기 전에 선제 공격을 가해온 것이다.-
나남을 본부로 하여 만주·시베리아와의 국경일대에 전개돼 있던 일제의 조선군 사령부 예하 19사단의 사단장 「모리야마」(삼산)중장은 1920년 6월 대대병력에다 몇 개 중대를 추가시켜 만주 문도의 봉오동에 있는 홍범도 장군의 대한독립군을 소탕하려 했던 것이다.
홍장군은 이를 미리 알고 교민을 산 속에 피난시키고 부대를 유리한 지혈에 잠복시켰다가 빈 마을에 들어와 방심하고 있는 일군을 포위, 공격했다.
결과는 일군은 전사 1백57명, 부상 3백여명을 내고 패주했다. 우리측 피해는 장교 1명, 사병 3명이 전사하고 l명이 부상한 정도다. 이것이 우리 독립군 무장항쟁의 최초의 대첩인 봉오동 전투다.
여기엔 주변의 여러 독립군 부대들의 지원도 있었으나 역시 주력과 지휘는 홍장군 부대였다.
군정엘리트가 집결되고 오랜 준비가 갖춰진 이청천 부대가 일군의 공격에 저항을 못하고 도주한 것과는 달리 군사이론도 없고 준비도 빈약했던 홍범도 부대가 연전연승을 거둔 것은 신비의 하나다. 그러나 우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홍범도 부대가 무기를 갖출 수 있었다는 점과 실전을 통해 익힌 병사들의 체력과 사격술, 그리고 홍범도 장군의 인간적인 리더심에 감복한 지방 민병들의 의리와 충성심이라 하겠다. <계속>
장창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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