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반도 조심조심 대부분 신중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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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건국 후 두 번째의 해외파병이 실현될 것인가.
레바논으로부터의 파병요청이 발표되자 실명제나 자원관리법 등에 쏠렸던 국회·정당의 관심이 이 문제로 집중되고 있으며, 많은 의원들이 여야 구별 없이 찬·반·신중론을 펴고있다. 정부로서도 여론의 동향과 파병에 따른 득실을 예의검토, 「정확한 판단」을 하기 위해 부심중이다.
○…레바논 파병 문제에 관한 정부의 작업은 현재 판단에 필요한 각종 데이터의 수집검토 단계.
외무부는 공노명 차관보를 팀장으로 하는 특별작업반을 만들어 파병여부에 관련된 구체적인 이해득실을 정확히 판단할 수 있는 자료수집과 검토에 바쁘다.
우선 레바논과 이해관계가 있는 주변국 및 여타우방에 대한 의사타진을 위해 각 공관을 통해 각국의 반응을 수집중이다. 미국은 환영한다는 공식논평이 나왔고, 일본도 국제평화에 기여한다는 점에서 환영한다는 반응이며, 아랍권의 모로코· 요르단 등 온건국가도 긍정적인 반응을 나타낸 것으로 알려졌다.
또 우리와 동시에 파병요청을 받은 여타 5개국의 태도도 우리의 결정에 주요한 변수로 작용할 것이 틀림없는데 현재 스웨덴은 유엔을 통한 파병이 아니라는 점에서 신중을 기하고 있고, 영국은 포클랜드·키프로스 등 해외에, 병력을 두고 있어 난색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비록 우리가 레바논과 대사관계를 갖고 있으나 파병요청 등 중요한 사항은 관례상 제3국을 통해 1차 의사타진 등이 있는 것이 보통인데 레바논은 이런 절차 없이 직접 요청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또 파병요청만 했을 뿐 규모나 시기·주둔기간·주둔지역 등에 대한 구체적인 요구가 없는 상황이어서 정부가 오히려 답답한 심정.
○…민정당은 지난 10일 공식적으로 표면화된 레바논의 한국군 파병요청 문제가 64년 월남 파병 문제를 놓고 벌어졌던 극심한 국론분열현상과 같은 사태를 몰고 오지는 않을 것 같다는데 1차적으로 안도하는 모습.
민정당 안에는 가능한 한 서두르지 않고 신중하게 객관적 정세판단을 해서 대처해야 한다는 신중론이 지배적 의견. 이재형 대표위원. 권익현 사무총장·이종찬 원내총무는 『레바논자체의 사정이 안고 있는 복잡다기한 요인과 레바논을 둘러싼 미소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민족해방전선 및 시리아 간, 그리고 아랍세계 내의 좌우·강온 간 등의 얽히고 설킨 문제, 레바논 내부정세, 파병조건 등에 관한 정보를 입수, 종합적으로 분석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자세를 견지.
이 총무는 따라서 당은 정부에 성급한 결정을 내리지 말도록 하는 한편, 외무당국이 각 정당의 당론을 결정하는데 필요한 충분한 레바논 관계정보를 제공토록 요청했다면서, 민한당 측이 성급하게 관계상위를 요구한데 대해 못마땅하다는 태도.
당직자들과 평의원들도 그래서 이에 관해 사견일 망정 견해를 표명하는데 아주 말을 아끼는 실정.
봉두완 배명국 김정호 전병자 양창직 의원 등 파병 긍정론을 펴는 의원들은 우선 명분상으로 전투행위에 참전했던 월남전의 경우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을 지적한다.
△다국적평화유지군의 일원으로 참가함으로써 우리가 평화를 사랑하는 국가라는 평화지향적 이미지를 만방에 심을 뿐 아니라 북한을 누를 수 있는 계기가 된다(봉두완 의원) △분쟁의 중재적 경찰성격이므로 중동은 물론, 제3세계에 대한 외교적 발판을 강화하고 기존의 한미관계를 더욱 공고하게 한다(김정호·전병자 의원) △중동진출에 유리한 고지로 활용할 수 있다(배명국·양창직 의원)는 의견이 긍정론의 내용.
긍정론에도 그러나 전반적인 여건의 성숙과 조건이 국익에 합치해야한다는 단서를 달고 있음은 물론이다.
파병반대성향이 짙은 신중론·판단유보론을 주장하는 의원들도 적지 않다. △기존의 미·불·이 등의 평화유지군으로도 격렬한 분쟁과 대립을 해소하지 못하고 있는데, 과연 우리가 파병한다해서 평화를 되찾을 수 있을까(익명을 요청한 당직자) △레바논과 같은 외교적 정글에 빠지면 얻는 것보다 손실이 오히려 많지 않을까(박동진 외무위원장) △파병요청의 주체가 유엔과 같은 국제기구가 아니라는데 문제가 이고, 팔랑헤 집권당 정권이 강력하지 못한데 우리가 파병하는 것이 레바논 사태해결에 어느 정도 도움을 줄 것인지 의문이다(최낙철 의원) △소수의 병력이긴 하나 우리 안보상에 허점을 드러낼 우려도 있고, 월남파병 때와 같은 전투경험의 축적도 기대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북괴의 악랄한 비방도 우려된다(유근 환 의원)는 등의 의견이 그것이다.
민정당은 이 문제에 관한 한 『돌다리를 두드려보고 건너간 사람을 보고 난 후에 건너가는 식이 돼야 할 것』이라고 말한 김영선 국방위원장의 말처럼 매우 조심스런 분위기다.
○…야권에서는 유일하게 부정적 입장을 밝힌 민권당을 제의하고는 대체로 신중론이 우세.
내주에 당론을 정할 예정인 민한당의 분위기도 신중론이 지배적이다.
유치송 총재는 군대의 해외파견은 매우 신중히 다뤄야할 문제라며, 파병의 조건·성격·규모 등이 분명치 않고 정부의 입장도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당론을 결정하기보다는 좀더 사태의 진전을 지켜보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유한열 사무총장·김현규 정책심의회의장은 평화군으로 파병되는 것은 우리의 위치나 힘을 국제적으로 과시하는 계기도 될 수 있어 전혀 무의미한 것만은 아니나 가능하면 국제분쟁에 휩쓸리지 않도록 신중을 기해야한다고 주장.
반면 허경구 의원은 『내가 집권자라면 보내기로 결정하겠다』면서 아랍권 진출의 전진기지 마련이 가능하다는 등 긍정적인 요인들을 열거한다.
그는 부정적 요인도 없지 않지만 월남 파병과는 근본적으로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야당이라고 해서 처음부터 반대할 것은 못되며 결국은 파병케 되는 요인이 많을 것이라고 주장.
국민당의 이만섭 부총재는 레바논 국내사정과 국제적인 관계를 고려한다면 경솔한 결정을 내려서는 안되고 일단 보류하는 게 좋겠다는 의견.
조일제 정책위의장도 대다수 아랍국가들의 찬성과 지지를 얻는 전제조건이 성립돼야 하므로 신중히 검토해야 할 문제라고 했고, 역시 신중론인 김영광 의원은 파견에 앞서 △주둔지경 △지휘권 △주둔비용 △희생발생에 대한 사후대책 등 사전에 검토해야 할 문제들이 많다고 주장.
12일 외무장관의 설명을 들은 국민당의 수뇌 진은 내주로 예정했던 당론결정을 일단 유보키로 했다.
한편 신사당의 고정훈 총재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볼 때 가게될 것 같다고 전망하면서 명분도 있다고 주장한다.
박정수 의원(의정)은 현재는 가부 단안을 내리기보다 여건과 변수를 면밀히 검토해야 할 때라면서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이 유엔깃발 아래가 아니면 파병을 하지 않는 것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수근·김현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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