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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의 공격으로 사자가 죽었을까…진양호동물원 미스터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경남 진주시 진양호동물원에서 수컷 불곰이 늙은 암사자를 공격하는 일이 일어났다. 암사자는 이튿날 죽었으며, 동물원은 '노화로 인한 자연사'로 진주시에 보고한 것으로 확인됐다.

7일 진주시에 따르면 지난달 29일 불곰이 암사자 우리에 침입했다. 곰과 사자 우리는 문이 달린 쇠창살로 나뉘어 있고, 문에는 자물쇠가 걸려 있었으나 곰은 문을 몇 번 걷어차 자물쇠 고리를 부수고 들어갔다. 낡아 녹이 슨 고리가 불곰의 힘을 견디지 못하고 부서진 것이다.

곰은 바로 사자를 덮쳤다. 이를 본 직원이 사육사 최모(56)씨에게 연락했다. 최씨는 곰에게 입으로 불어 쏘는 기구로 마취주사를 몇 방 쏜 뒤 둘을 떼어 분리시켰다. 최씨는 "사자의 어깨 부분 털이 좀 빠진 것 말고는 특별한 외상이 없었다"며 "항생제와 영양제를 주사한 뒤 별 이상이 없음을 보고 오후 6시 퇴근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다음날 오전 8시 30분쯤 최씨가 출근해 확인해보니 사자는 죽어 있었다. 사자를 부검한 수의사 유모(42)씨는 "사자가 늙어 1주일 전부터 식사를 전혀 하지 못하고 영양제로 버틸 정도로 상태가 안좋았다"며 "부검에서도 외상이 없었고 대장 출혈과 간에서 염증 등이 발견돼 늙어 자연사한 것으로 판단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익명을 요구한 목격자 A씨는 "곰과 사자를 떼어놓은 직후 사자의 얼굴과 몸은 피범벅이었고 우리 바닥에도 피가 흥건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사육사 최씨는 "피는 마취주사 바늘을 몇 대 맞은 곰이 흘린 것"이라고 해명했다.

사자를 공격한 곰은 12살로 사람으로 치면 30대, 공격받은 사자는 20살로 70대에 해당한다. 몸무게는 곰이 200㎏, 사자는 100㎏ 가량인 것으로 알려졌다. 야생에서 불곰은 주로 북미 대륙에 살고, 사자는 아프리카 초원에서 살아 서로 마주쳐 싸울 일은 없다. 자연상태에서도 체격은 불곰이 훨씬 크다. 큰 곰은 500㎏가까이에 이르는 반면 사자는 200㎏을 조금 넘는 정도다.

1986년 문을 연 진양호동물원은 곰이 문 자물쇠고리를 부술 정도로 곳곳이 낡았다. 원숭이 등 다른 우리에서도 쇠로 된 난간이나 창살을 손으로 문지르면 녹이 묻어났다. 동물들은 원래 자기 우리가 아닌 곳에서 사는 경우가 많다. 코끼리가 죽은 뒤 버펄로 두 마리가 거기서 산다. 사자우리에는 호랑이 2마리, 기린 우리에는 조랑말 5마리가 있는 식이다.

진주시는 해마다 사료비(약품비 포함)와 시설비 각각 1억원씩 모두 2억원(인건비 제외) 정도의 예산을 동물원 운영비로 지원하고 있다. 시설비 1억원은 동물원 입장권 및 관람권 발매기 유지보수, 직원 근무복 및 당직실 침구 구입, 매표소 난방비와 관용차량 운영비, 관람객용 테크 보수 등에 쓰면 그만이다. 동물 우리 개보수에 사용되는 돈은 거의 없다는 말이다.

진주시 측은 "5년여 전부터 진주 반성수목원으로 동물원 이전 논의가 시작되면서 사실상 동물 우리 등 시설 개보수는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7일 가족과 함께 진양호동물원에 온 김성남(40?전남 여수)씨는 "이곳은 노후화가 특히 심하고 동물들도 제대로 관리가 안되는 것 같다"고 했다.

진주=위성욱 기자 w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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