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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바꾸는 체인지 메이커] 오바마의 비밀병기 … 두 차례 대선 승리 프로그래밍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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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4호 24면

블루 스테이트 디지털은 미국의 골수 민주당 지지 청년들이 만든 세계 최고 수준의 디지털 선거 전략 수립 및 마케팅 회사다. 공동 창업자인 조 로스파스 최고경영자(CEO왼쪽)와 최근 보스턴시 최고기술책임자(CTO)로 취임한 야샤 프랭클린-호지 전 CTO. [사진 블루 스테이트 디지털]

2012년 대선 무렵 트위터의 국내 자문으로 잠시 활동한 적이 있다. 각 후보의 온라인 선거운동,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인터넷 여론동향과 투표 결과 간의 상관관계 등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됐다. 캠프들마다 사이버 역량은 기대에 못 미쳤고, SNS의 영향력 또한 제한적이었다. 외국과는 또 다른 국내 네티즌의 행동 패턴은 각 캠프는 물론 여론조사기관, 글로벌 데이터 분석 기업들까지 혼란에 빠뜨렸다. 트위터 측에 한국만의 독특한 정치 지형도와 인터넷 문화를 설명하느라 꽤 애를 먹은 기억이 난다.

<43> BSD 공동창업 조 로스파스와 야샤 프랭클린-호지

그 무렵 한 회사를 알게 됐다. 블루 스테이트 디지털(Blue State Digital·BSD). 2008년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 버락 오바마 후보의 승리를 견인한 뉴미디어 전략 및 기술 기업이다. 관련 자료들을 찾아보다 무릎을 쳤다. ‘아, 2012년 한국의 온라인 대선 캠페인은 ‘선사시대’ 수준에도 못 미치는 거였구나.’

실은 이 표현은 2012년 오바마의 재선 캠페인을 지휘한 짐 메시나의 발언에서 빌려온 것이다. 그는 선거전 당시 이런 말을 했다. “올해 캠페인은 2008년을 선사시대처럼 보이게 할 것이다.” 재미있는 점은 2012년 캠페인을 주도한 이 역시 BSD의 창업자들이며, 4년 전처럼 놀라운 승리를 거뒀다는 사실이다.

18~29세 70%가 오바마 지지하게 만들어
2008년 미국 대선 당시 BSD는 오바마에 대한 미국인 1300만 명의 온라인 지지를 이끌어 냈다. 총 650만 건의 기부 활동을 통해 5억6000만 달러의 선거자금을 모았다. 그중 절반 이상이 200달러 이하의 소액기부자였다. 90만 명의 열성적 자원봉사자를 배출했고, 18~29세 유권자의 70%가 오바마에게 투표하는 데 결정적 공헌을 했다. 상대편인 공화당 존 매케인 후보에 비해 페이스북 ‘친구’는 4배, 트위터 팔로어는 40배, 유튜브 동영상 조회수는 10배에 이르렀다.

2012년 성과도 훌륭하다. 선거 직후 오바마 후보의 페이스북 ‘좋아요’ 숫자는 상대편인 공화당 밋 롬니 후보에 비해 3배, 트위터 팔로어 숫자는 12배, 구글 플러스 ‘친구’는 23배, 유튜브 동영상 조회수는 10배였다. 모금액은 역대 최고액인 10억 달러에 육박했다. 공화당이 4년 전의 아픈 기억을 교훈 삼아 만만찮은 준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미국 경제지 비즈니스위크가 BSD에 ‘오바마의 비밀 디지털 병기(Obama’s Secret Digital Weapon)’란 별명을 붙인 연유다.

BSD의 시작은 2004년 미국 대선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무명이던 하워드 딘 전 버몬트 주지사가 돌풍을 일으킨다. 진원지는 인터넷이었다. 그는 미트업닷컴(meetup.com)이란 초기 SNS를 통해 지지자를 결집시키며 일약 전국구 스타가 됐다. 특히 온라인 모금에서 탁월한 성과를 냈다. 인터넷에서만 무려 32만 명의 기부자로부터 약 4500만 달러를 끌어모았다. 그러나 문제는 온라인에서의 이런 열광을 오프라인으로 연결시키는 데 실패했다는 것. 결국 후보에서 자진 사퇴하고 말았지만 그의 인터넷 선거운동은 미국 정치 문화를 바꾸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BSD도 그 산물 중 하나다.

딘 캠프 해체 뒤 그곳에서 일하던 젊은이 4명이 의기투합했다. 조 로스파스(Joe Rospars), 야샤 프랭클린-호지(Jascha Franklin-Hodge), 클레이 존슨(Clay Johnson), 벤 셀프(Ben Self). 이 중 존슨과 셀프는 2008년 BSD가 오바마 캠페인에 전면 결합하기 전 회사를 떠났다. 현재 미국 정·관계를 위한 기술 컨설팅 및 온라인 마케팅 전문가로 활약하고 있다. 결국 BSD를 오늘날 세계 최고 수준의 뉴미디어 전략 기업으로 키운 건 로스파스와 프랭클린-호지인 셈이다. 어쨌거나 네 청년은 회사 이름에 자신들의 정치적 지향을 선명하게 박아 넣었다. ‘블루 스테이트’는 미국의 민주당 우세 주(州)를 말한다.

이렇게 시작한 BSD는 민주당 성향의 정치 캠페인은 물론 공공기관과 비영리 재단, 때로는 AT&T 같은 대기업의 디지털 마케팅을 담당하며 조금씩 성장해 갔다. 2007년 2월 어느 저녁, 최고기술책임자(CTO)인 프랭클린-호지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온다. 민주당 경선 출마 발표를 9일 앞둔 오바마 진영의 선거 참모였다. 그렇게 캠프에 합류한 BSD는 갈고닦은 실력을 마음껏 발휘한다.

온라인 활동 추적·분석해 마케팅 차별화
핵심에는 ‘마이보(MyBO)’라 불린 공식 사이트 마이버락오바마닷컴(my.BarackObama.com)이 있었다. 마이보는 단순한 홈페이지가 아니었다. 오바마 지지자들이 교류하고 소통하며, 직접 제작한 콘텐트를 주고받고 캠페인을 조직하는 허브이자 SNS 플랫폼 역할을 했다. BSD는 지지자들의 온라인 활동을 세심히 추적해 활동 성향, 관심 정도, 거주 지역 등에 따라 차별화된 마케팅을 시행했다. 또 지지자들의 콘텐트 생산을 장려해 유튜브를 통해 40만 개 이상이 공유되도록 했다. 타깃 유권자 층의 관심이 높은 단어를 적극 수용해 검색 결과를 장악하고, 아이폰 전용 앱을 개발해 모바일 영역마저 공략했다. 보트빌더(VoteBuilder.com)라는 전용 사이트를 통해 유권자 데이터베이스도 정력적으로 구축했다. 더욱 놀라운 건 당시 각각 27세, 29세에 불과하던 로스파스와 프랭클린-호지가 대부분의 핵심 전략회의에 참여하며 새 정책 입안과 재설정을 리드했다는 점이다.

2008년 선거가 소셜 마케팅의 승리였다면, 2012년에는 빅데이터 분석을 통한 ‘마이크로 타기팅’이 빛을 발했다. BSD는 2010년 영국의 세계 최대 광고·마케팅 그룹 WPP에 인수됐는데, 로스파스와 프랭클린-호지는 오바마의 재선을 돕기 위해 과감히 회사를 그만뒀다. 두 사람은 마치 스타트업이 창업에 도전하듯 선거에 임했다. ‘한 사람 한 사람마다, 한 표 한 표씩’이라는 목표에 맞춰 개별 지지자와 ‘퍼스널 커뮤니케이션’을 실제 구현할 수 있는 기술과 시스템을 개발했다.

기존 데이터베이스와 지지자가 자발적으로 내놓는 개인정보를 기반으로 SNS 등 각종 빅데이터를 통합해 정교한 개인 맞춤형 타깃 마케팅을 펼쳤다. 또한 빠르게 실행하고 끊임없이 교정하며 적중률을 높였다. 한집에 사는 부부에게도 각자 성향에 따라 내용과 발신인이 다른 e메일을 보낼 정도였다. 상대 진영에서 네거티브 전략을 쓰면 시스템이 즉각 작동해 검색엔진에서 오바마 측 해명이나 반격이 먼저 노출되도록 조치했다.

오바마 재선에 성공한 로스파스는 지난해 3월 다시 BSD의 최고경영자(CEO)로 돌아갔다. BSD는 2010년 브라질 대선, 2012년 프랑스 대선에도 참여해 승리했으며, 현재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뉴미디어 전략 회사 중 하나다. 한편 프랭클린-호지는 지난 7월 미국 보스턴 시의 CTO가 됐다. 공무원이 된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보스턴 시 최초의 해커톤(해킹 마라톤)을 열고 데이터 공유 정책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2007년 비즈니스위크 기자가 “(회사를 키우려면) 정치적으로 부담되는 이름을 바꿔야 하지 않겠느냐”고 묻자 BSD 임원은 이렇게 답했다. “우리는 항상 진보적 이상주의를 견지할 겁니다.” 이들은 아직 이름을 바꾸지 않았다. 또한 여전히 정치적이다. 그럴 수 있어 존경스럽고, 그래도 괜찮다니 부럽다.

이나리 은행권청년창업재단 기업가정신센터장 naree@dcamp.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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