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회의 가시매로 다스려|원불교 서울교구장 향타원법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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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글 배우러 간다고 집을 나섰지요. 그것이 영원한 출가길이 될 줄은 알지 못했습니다.」 원불교의 향타원법사(59·본명 박은국·서울교구장)는 원불교에 귀의하게 된, 결코 우연같지만은 않은 인연을 이렇게 풀어나갔다.
전남 장성에서 태어난 그는 우연히 원불교 영산선원(전남영광)에 보다 가까운 법성포로 이사가 살게 되었다.
법사의 나이 17세. 일제말기의 세상은 어둡고 불안하기만 했고 국민학교만 나와 집에서 무료히 지내고 있던 그는 모든 것이 걱정스럽고 희망조차 없어 보였다.
『저어기 어딜 가면 공부도 하고 선생도 될 수 있다』 는 이웃의 말에 무조건 기대를 걸고 찾아 간 곳이 원불교의 영산선원.
당시는 불법연구원이었던 선원에서 그는 어둠 속에 찬란한 광명을 본듯한 기분으로 불법연구에 빠져들었다고 했다.
가장 먼저 세계를 위하고 그 다음 국가와 교단과 자신을 위한다는 원불교 교의에 따라 독신으로 세계와 사회를 위해 일하겠다고 서원한 것은 18세. 『그때의 꿈은 정말 우주만큼이나 컸습니다. 이 길을 택할 수 있었던 깊은 인연에 감사하고 있었지요.』
하지만 정신의 수련이란 그렇게 쉬운 것만은 아니었다. 끝없는 회의. 이 회의와의 싸움은 한동안 그를 교단에 서지도 못하게 했다.
『나를 이기지도 못한 내가 누구를 가르치겠다고…】라는 자책 때문이었으며 한편으로 육체는 한없이 쇠약해져 갔기 때문이다.
법사가 심하게 회의에 빠졌던 때는 27세 때와 37새 때. 27세 때는 차라리 범인처럼 결혼해서 가정에 충실하느니만 못하지 않느냐는 회의였고, 37세 때는 인생전반에 관해 다시 미궁에 빠져들어 아무 것에도 뜻을 두지 못했던 시기였다고 설명해 준다.
이 회의를 깨우쳐 준 것은 백일기도였다.
『90일까지는 아무 진전이 없는 것 같더니 1백일이 가까와지면서 무언가 자신이 생깁디다.』
30대에 온 두 번째의 큰 회의는 가시 매로 치유한 셈이라고 덧붙인다.
모든 것에 뜻이 없어 망연히 앉아 있으면서도 방안에 가시로 만든 매를 두고 이를 다스리려 노력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주만상이 마음 하나로 된다』는 그 뜻을 밝혀 깨닫게 되더라고.
그후 나뭇잎 부딪는 소리도 좋게 들리며 삼라만상이 모두 즐거움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여기에도 다시 공경지가 기다리고 있었다고 했다. 속세를 떠나 혼자 살고싶은 마음. 교단에서는 이때 그를 신도들이 기다리고있는 신도안으로 보냈다.
신도들과 함께 해야할 일이 많았던 때다.
끝없이 고뇌하면서 한없이 울고, 가시 매로 자신을 다스려온 향타원법사는 이 같은 수련과정에서도 끊임없는 교화활동을 벌여왔다. 이제 향타원법사의 설법은 교도들에게 가장 설득력있는 것으로 통하고 있다.
새로 입교한 교도가 교화를 받아 성품이 바뀔 때, 원생생활을 보내던 사람이 전지의 은혜로움을 알게 되었을 때 법사는 큰 보람을 느껴왔다.
계율과 규율을 엄히 아는 향타원법사는 현재 1천여명의 정녀 (독신으로 봉사하는 여성교무) 모임인 정화 단 단장의 직책도 맡고있다.
원광대학교의 전신인 유일학림1기로 외학을 일체 공부하지 않고 원불교 법문에만 정진한 그는 무엇보다 가정의 화평과 조화를 중히 여긴다.
새벽5시기상, 1시간의 좌선과 심고, 몇 가지 과일로 때우는 아침식사와 오전 일이 끝나면 거의 매일 교도의 집을 일일이 방문, 상담에 응하는 것도 가정을 중히 여기기 때문이다.
원불교는 1916년 4월 28일 전남 영광의 박장빈대종사가 깨달음을 얻어 새 시대 새 종교로 개교한 종교로 그 연원은 불교에 두고있다.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최초의 표어가 말하는 대로 정신구원에 그 뜻을 두고 있어 첫째 목표가 교화다.
종단은 선거로 뽑힌 대표들이 운영하며 종단의 명령에는 누구나 따라야한다. 때문에 개인의 업적이나 계획같은 것은 있을 수 없다.
원불교는 비록 불교에 연원하지만 기독교와 마호멧교의 관계와 같아 순수한 한국종교라는 것이 향타원법사의 설명. 개교 때부터 남녀권리동일을 교리에 담아 세계에서 남녀평등을 인정하는 유일한 종교.『사람이 마음 하나 밝히면 모든 문제가 눈 녹듯 사라집니다. 마음을 닦아야지요.』
40년을 원불교 교리와 살아온 향타원법사는 이 한마디를 세상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다고 했다.

<김징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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