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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즈] 혼자서도 잘하는 우리 아이만들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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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 곳곳을 청소하고 있는 엄마와 이를 옆에서 지켜보던 초등학교 2학년 아들의 대화.

아들:"엄마! 엄마는 신데렐라 같아."

엄마:"신데렐라? 공주?"

아들:"아니! 재투성이 신데렐라. 엄마는 왜 하루 종일 청소, 빨래만 해?"

'자식을 위해 헌신하고 있다'고 자부하는 엄마라면 복장이 터질 만한 얘기다. '내가 지 놈을 어떻게 키우고 있는데…'. 하지만 어느 가정에서 실제로 있었던 대화 한 토막이다.

가정의 달 5월은 자녀 교육에 대해 이런 저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시기다. 엄마인 당신은 '신데렐라'를 자처하며 오히려 자녀를 잘못 키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제 손으로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아이로.

'신데렐라'를 거부하며 자녀에게 스스로 할 일을 하게 하고 집안 일도 분담케 하는 엄마들의 얘기를 들어봤다. '우리 아이는 어떻게 자라고 있나' 한번 점검해보자.

# '엄마 때문에'란 말 못들어봤어요

-초등학교 5학년 외아들을 둔 '게으른'엄마 이모(36.서울 동작구 사당동)씨

"믿거나 말거나지만, 아이 초등학교 입학할 때 아이를 앉혀 놓고 이런 얘기를 했어요. '아침에 엄마가 안 일어나면 네가 알아서 학교 가는거야. 네 일은 네가 알아서 하는 거야'. 아침에 아이를 깨워줘 본 적이 거의 없어요.

열심히 해 놓은 숙제를 집에 빼 놓고 간 것을 보고도 학교에 가져다 주지 않았어요. 지각했다고, 준비물 안 챙겨 왔다고 학교에서 많이 혼났겠죠? 그 탓에 우리 애는 자기 일은 스스로 해야 하는 것으로 당연히 생각하고 있어요.

아, 생각나는 일이 있네요. 한번은 아이의 같은 반 친구와 그 엄마가 우리 집에 놀러 온 적이 있어요. 그런데 그 아이가 무슨 얘기를 하다가 '엄마 때문에 이렇게 됐잖아'하고 자기 엄마한테 항의하는 거예요. 그 순간 저와 제 아들은 눈이 동그래져서 마주 본 기억이 나요. '자기가 잘못했지, 엄마는 왜 들먹거려?' 이런 생각이었죠.

우리 아이는 아주 활발하게 잘 놀고 자기 할 일도 잘 하고 그래요. 친구들 모아 먼 곳에 놀러도 가고 영화도 보러 가고, 자립심을 제대로 갖게 된 것 같아요. 지방에 있는 할아버지 댁도 혼자 다닌지 꽤 되고요. 공부요? 공부도 썩 잘하는 편이죠. '엄마 때문에…'라는 말은 아이한테 한번도 못 들어봤어요."

# '주는 기쁨도 크다'고 가르쳐요

-초등학생.유치원생 두 딸을 둔 '당당한' 엄마 김모(39.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구미동)씨

"남자든 여자든 집안 일의 기본은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게 제 생각이에요. 그래야 남자든 여자든 혼자 자신을 챙길 수 있는 능력이 생기고요. 제가 식사 준비를 끝내면 큰애는 식탁에 음식 나르고 수저 챙기고, 작은애는 물 떠오고 바쁘답니다.

처음에는 귀찮아했지만 이제는 자기 몫이 됐다는 걸 느끼는 것 같아요. 저는 애들에게 자주 이야기합니다.'받는 기쁨도 크지만 주는 기쁨도 크다'고 말이죠.엄마도 아빠도 너희들에게 받는 기쁨을 느낄 수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어서 입니다."

# 스스로 행복하기 위해 배워야 할 것

-외아들(30) 다 키운 '평범한' 엄마 박모(52.서울시 성동구 행당동)씨.

"다 그렇게 키우지 않나요. 우리 때에는 '어떻게 키워야 하나' 고민하진 않았어요. 그냥 죄다 시켰죠. 청소. 빨래. 간단한 음식 만들기 등의 가사일이나 동사무소 민원서류 발급받는 일, 은행 출입, 전기료 납부 등….

엄마인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초등학교 때부터 자연스럽게 무엇이든지 다 시켰어요. 시켜보면 아주 잘 해오더라고요. 잘했다고 칭찬해주고 나서 반드시 한마디 했습니다. '이런 것 정도는 사람이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기본'이라고요.

그리고 '지금부터 조금씩 배워가는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어릴 때부터 산에 데리고 다니면서 등산장비 꾸리기, 텐트 치고 걷기 등도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대학생이 돼서 그럽디다. '누구나 나처럼 크는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더라'고, ' 동사무소는 가 본 사람이 없고, 엄마가 집에 없으면 음식은 시켜 먹는 걸로 아는 사람이 많더라'고. 서른이 된 요즘은 '엄마, 오래 살아야 돼. 나중에 우리 애도 엄마가 나 키운 듯 키워줘야지' 해요."

# 자녀의 실수를 용납해주세요

-자녀 문제로 고민하는 엄마를 수도 없이 만난 정신과 의사 신의진(39.여.연세대 정신과 교수)씨

"아이들 문제로 저를 찾아오는 엄마들은 거의 다 아이들을 곱게 키우는 분들이에요. 모든 걸 다해주는 '완벽한' 엄마들은 아마도 자신과 떨어져 혼자 있는 아이는 상상도 할 수 없을 거예요. 과보호는 아이를 바보로 만들 가능성이 커요.

늘 알아서 모든 걸 해주는 엄마 옆에 있던 아이는 정작 세상에 나가서 적응을 잘 못하고 위축되는 경향을 보이죠. 좋은 엄마가 되고 싶은 바람이 오히려 아이를 망치는 나쁜 결과를 낳는 거예요. 잡초처럼 생명력이 왕성한 아이로 키우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엄마들 스스로 자녀들에 대한 믿음이 없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다보니 모든 것을 다 해주려고 하지요.

그런 가정에서는 아이들도 '실수를 할까봐, 그래서 부모에게 혼날까봐' 매사에 엄두를 못내지요. 가정에서 자녀 스스로 자기 일을 하게 하면 아이 자신이 가정과 사회의 당당한 주체라는 인식을 갖게 됩니다. 아이들의 실수를 인정하고 자유와 책임을 줘 보세요. 그러려면 엄마가 먼저 달라져야 하겠죠?"

정리=성시윤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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