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 숨지게 한 백인 경관 또 불기소 … 들끓는 뉴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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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 에릭 가너를 체포하는 과정에서 목 졸라 숨지게 한 백인 경찰이 불기소 처분을 받은 데 항의하는 시위가 3일 뉴욕 타임스스퀘어에서 벌어졌다. 시위대 앞에서 경찰이 언짢은 표정을 짓고 있다. [뉴욕 로이터=뉴스1]
경찰이 에릭 가너를 과잉 제압하고 있는 장면.

비무장한 흑인을 숨지게 한 백인 경관에게 또 다시 불기소 처분이 내려졌다. 이번엔 미국 진보 진영의 아이콘으로 자부하는 거대도시 뉴욕에서다. 미국 사회는 뉴욕이 ‘제2의 퍼거슨’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 속에 사태를 주시하고 있다.

 미국 뉴욕시 스태튼 아일랜드 대배심은 3일(현지시간) 흑인 에릭 가너(43)를 담배 불법 판매 혐의로 체포하다가 ‘목 조르기(chokehold)’를 해 숨지게 한 백인 경찰관 대니얼 팬털레오를 기소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가너는 지난 7월 17일 스태튼 아일랜드에서 낱개 담배를 불법으로 판 혐의로 경찰의 단속을 받았다. 경찰관 4~5명이 가너에게 달려들었고, 목 조르기로 길바닥에 쓰러뜨렸다. 천식 환자였던 가너는 “숨을 쉴 수 없다”고 수차례 호소하다 의식을 잃었고,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숨졌다. 당시 상황은 한 시민의 휴대전화에 고스란히 찍혀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이날 대배심 결정은 10대 흑인 마이클 브라운을 총으로 쏴 숨지게 한 퍼거슨시의 백인 경찰 대런 윌슨에 대해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 대배심이 불기소 결정을 내린 지 9일 만이다. 외형상 두 사건은 닮은 꼴이다. 대배심에서 백인이 과반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NBC 방송은 대배심 23명 가운데 백인이 14명, 흑인은 5명이라고 보도했다.

 이날 타임스스퀘어를 비롯한 뉴욕 도심 곳곳에선 수천 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항의 시위를 벌였다. 워싱턴DC와 애틀랜타 등에서도 시위가 진행됐다.

 법무부는 대배심 결정 직후 이번 사건에 대해 연방정부 차원의 시민권 침해 수사를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미국의 고질병인 인종차별에 대한 분노가 뉴욕에서 폭발하는 것을 조기 차단하려는 것으로 보이는 이례적으로 신속한 조치다.

뉴욕=이상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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