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인은 어디로 증발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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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범인은 어디로 증발했을까.
서울 잠원동 아파트셋방처녀 박성숙양(25)을 살해하고 강변으로 달아났던 범인의 발자국은 제3한강교하류 2백m지점에서 뚝 끊어지고 팬츠차림으로 도주했다는 사실만 밝혀졌을뿐그 이후의 행방은 오리무중인채 31일로 발생1주일을 맞았다.
경찰은 사건 다음날 범인이 도주하며 남긴 발자국과 벗어던진 겉옷들을 발견했다.
범인의 옷은 사건현장인 한신아파트116동에서 2백여m쯤 떨어진 한강변에서 발견됐다.
피묻은 면강갑·운동화·점퍼·양말·T셔츠·러닝셔츠가 발자국을 따라 20∼50m 간격으로 떨어져 있었으며 다시 5백여m쯤(제3한강교하류 2백m지점) 떨어진 웅덩이에서 금 브로치가 들어있는 바지를 찾아냈다.
범인의 맨발자국은 바지가 발견된 폭4m쯤의 웅덩이를 건넌뒤 강쪽과 반대편인 강변도로쪽으로 어지럽게 나있을뿐 끓겼다.
여기서 경찰은 범인이 내의차림이라는 점에 착안 ▲다른옷을 미리 준비했을 가능성 ▲근처 연고지에의 잠입 ▲헤엄쳐 건넌뒤 도주 또는 익사 ▲근처 주택가에서 옷을 훔쳐 입은뒤 택시로 도주 ▲기타 보트를 준비했거나 투신자살등 모든 가능성을 놓고 세밀히 검토추적중이다.
첫 가능성인 옷을 미리 준비해 뒀고 이를 갈아입고 갔다면 범인은 그야말로 사전에 치밀한 범행계획을 세웠던 것으로 해석된다.
범인이 칼을 가지고 침입한 점, 장갑을 끼어 지문을 남기지 않은 점, 범행장소가 도주가 비교적 어려운 8층이라는 점등으로 볼때 계획범행 가능성은 상당히 높다.
그러나 피가 묻으리라는 것까지 예상했다고 보기 어렵고 운동화까지 벗어버린 점, 옷가지발견장소엔 뚜렷한 지형지물이 없어 어둠속에서 새옷을 숨기기 적당치않다는 점등으로 보아 옷을 준비해 뒀을 가능성은 일단 희박하다고 보고있다.
또 보트를 준비했다면 옷까지 벗을 필요가 없었으며 옷들이 놓인 상황으로 볼때 무언가 몹시 쫓기고 허둥댄 흔적이 여실해 투신자살하려는 행동과는 거리가 멀다.
이에따라 경찰은 6가지가능성 가운데 ▲도강(도강)이나 ▲내의차림의 주택가 잠입등 두가지중 하나로 보고있다.
옷은 혈흔을 없애고 목격자들로부터 위장하기 위해서는 거추장스러운 것이기도하 나 수영을 위해서는 간단한 차림이 요구된다.
신발 역시 물과 진흙에 빠져 불편했다고 볼수도 있겠으나 수영을 위해 벗었다는 것이 더욱 설득력이 있다.
이곳의 강폭이 너비3백m쫌으로 일대 한강에선 가장 좁다는 점도 수영가능성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범인이 웅덩이 바로 앞에서 바지를 벗은것도 밤이면 웅덩이가 강물시작부분으로 보이기때문에 수영을 시작하려고 했다는 설명이 가능하다. 실제 범인은 웅덩이를 건넌 발자국이 나있다.
이날의 밤기온은 섭씨5도쯤. 전문가들은 물속이 차가왔겠지만 심장마비에 걸릴 정도는 아니라고 했다.
그러나 건너편에서 어떻게 했을까하는 의문점은 여전히 남아있다. 아울러 경찰은 잠원동쪽 강변주택가 잠입가능성에 수사비중을 더 두고있다.
바지가 발견된 장소에서 강변도로 건너편에는 50여채의 주택과 50여채의 가건물이 있다. 가건물은 복덕방·정비업소·음식점등이 들어서있다.
이곳으로 들어섰다면 자갈밭·포장도로여서 발자국은 남지않게 돼있다.
경찰은 범인이 이 일대 연고지가 있어 숨어들었을 가능성이 높은것으로 보고 범인의 옷가지·사진을 주민들에게 돌리는등 일대 수사에 주력하고 있다.
범인의 옷은 중상층이며 바지통이 좁아 건달차림.
숨진 박양은 일기에서 80년8월 직업여성의 길로 들어선후 『내주위사람들을 위해 나를 희생하고 돈을 벌겠다. 사랑·의리란 없다. 오직 한(한)만 남아있다』는등 자학과 비탄을 적고있어 도시로 간 처녀의 단면을 보여주고있다. <허남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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