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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관의 눈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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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2%의 소금, 약간의 단백질, 살균작용을 하는 라이소자임, 알칼리성. 눈물의 성분이다.
사람이 하루에 흘리는 눈물은 1g도 안된다. 겨우 0.7g.
갓난아기에게 눈물이 없는 것은 이상하다. 울음소리는 요란해도 눈망울은 깨끗하기만 하다. 조물주도 갓난아기에게까지 눈물을 흘리게 하는 것은 너무 잔인하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아무튼 사람은 생후 4개월이 지나야 눈물을 흘린다. 흉노애락의 삶이 비로소 막을 올리는 것이다.
눈물 한 방울-, 그 성분은 실로 보잘것 없지만 그 속에 농축된 무게는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 기쁨의 눈물, 슬픔의 눈물, 위선의 눈물. 어디 그 뿐인가. 영웅의 눈물, 시인의 눈을, 장군의 눈물, 거지의 눈물도 있다.
미국의 유명한 전기작가 「존·건더」는 그의 저서「항진』에서「히틀러」의 눈물 얘기를 하고 있다. 절세의 독재자, 6백만명의 유대인을 학살한 폭군 「히틀러」도 남모르게 눈물을 주르르 흘리는 때가 있었다는 것이다.
몇 달을 두고 불안한 고전을 겪는 때는 자신의 능력을 한탄하며『여자처럼』 눈물을 흘리곤 했다. 나치당의 분파지도자「오토·슈트라서」가 탈당을 할 때「히틀러」는 그 앞에서 세번이나 울음을 터뜨렸다.
그는 승리의 기쁨보다는 좌절의 슬픔에 더 많은 눈들을 흘린 셈이다. 그도 정서적으로 얼마나 불안정한 사람이었나를 알 수 있다.
「건더」는「스탈린」과 같은 사람도 울었을까, 의문을 갖고 있다.
그러나 바로 그 「스탈린」도 딸을 잃고 나서 눈물을 뚝뚝 흘렸다는 기록이 있다.
눈물 때문에 미국 대통령의 꿈을 버린 사람도 있었다. 1972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지망자 「E·머스키」. 그 무렵 뉴햄프셔주의 보수계 유력신문 맨체스더 유니언 리더지는 「머스키」의 부인이 『술고래와 골초』라고 비난, 『백악관에 들어가기엔 품격이 모자란다』고 혹평.
「머스키」는 때마침 펄펄 내리는 함박눈을 맞으며 그 신문사 앞에서 『거짓말 말라』고 항의, 눈물까지 흘렸다. 상황이 그쯤 되면 내심 유권자의 동정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던 것 같다.
그 결과는 뜻밖이었다. 워싱턴포스트지나 뉴욕타임즈지는 여지없이 그것을 흉보았고, 공화당은 『안정된(마음이) 정치가가 아니다』고 화살을 쏘았다.
눈물을 가질 수 있는 눈은 사람에게만 있다. 조물주가 인간에게 눈물을 허락하지 않았다면 아마 지구는 벌써 황량한 유성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조물주는 인간에게 이 눈물을 감출 줄 아는 절도의 지혜도 함께 주었다. 눈물은 분명 강철을 녹을 수 있는 열도를 갖고 있지만, 세상의 모든 일이 눈물에 좌우된다고 한번 상상해 보자. 그것처럼 견디기 어려운 상황도 없을 것 같다.
역시 인간의 세계는 눈물도 필요하지만 그보다는 이성의 지배를 받을 때 평안하고 순조롭다. 눈물은 시간이 지나면 씻은 듯이 마르고 말지만 이성의 빛은 초롱초롱 빛난다.
요즘 어느 여장관의 눈물을 보며, 공인은 특히 눈 관리를 잘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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