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추억] '한국 야구의 역사' 박현식씨 별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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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아시아의 철인'으로 불리던 야구인 박현식씨가 20일 낮 12시35분 별세했다. 76세.

1929년 평남 진남포에서 태어난 박씨는 일곱살 때 가족과 함께 인천에 정착해 야구 명문 동산고에서 투수로 활약했다. 고인은 제일은행에 들어가면서 타자로 전환했고 54년부터 국가대표 부동의 4번 타자로 이름을 날린 슬러거였다. 한국 최고의 홈런타자 계보는 그로부터 시작해 60년대 김응룡씨, 70년대 박영길씨 등으로 이어졌다.

고인은 82년 프로야구가 출범할 때 인천을 연고로 했던 삼미 슈퍼스타스의 초대 감독을 맡았다. 성적 부진을 이유로 13경기 만에 해임돼 역대 최단명 감독으로 남아있지만 인천 야구에 대한 지칠 줄 모르는 애정을 보여왔다. 그라운드를 떠난 뒤에는 대한야구협회 경기이사, 심판이사를 지냈으며 한국야구위원회(KBO) 심판위원장, 규칙위원장도 역임했다.

고인은 현역 시절 홈런을 날린 뒤 공을 주은 관중에게 사례하고 자신의 홈런공을 보관해 온 꼼꼼함으로도 유명했다. 현재 KBO가 야구박물관 건립을 위해 수집.보관 중인 많은 야구용품은 대부분 고인이 모은 것이었다. 이상일 KBO 사무차장은 "50년대 광목으로 만든 유니폼부터 홈런 공 등을 온전하게 보관하고 있다가 KBO에 기증했다. 한국 야구의 역사가 돌아가셨다"며 안타까워 했다.

위암으로 투병 중이던 고인은 16일 인천 문학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올스타전에 시구자로 나섰다(사진). 야구인으로서의 마지막 행사였다.

유족으로는 부인 최명진(75)씨와 2남 2녀가 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이며 발인은 24일 오전 6시다. 02-3410-6912.

성백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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