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 타임] 품속 자식이 어느 날 독립선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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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얼마전 절친한 선배로부터 이런 하소연을 들었다.

태어나면서부터 대학에 입학할 때까지 부모가 하라는 대로 따라주던 아이가 대학 가서 여자 친구가 생기더니 갑자기 독립선언을 하더란다. "제 이름으로 된 통장은 제가 관리할 테니 이젠 절 주세요."

망연자실해하는 선배에게 아들은 한 방을 더 날렸다.

"이제는 제 일에 간섭 마세요. 제가 충분히 알아서 할 수 있으니까요."

선배는 이루 말할 수 없는 허탈감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겠더란다.

"내가 저 놈을 어떻게 낳아 키웠는데 저럴 수 있는 거야. 갑자기 내가 살아야 할 이유가 없어진 거 같고 인생이 허무해져서 재미가 없어."

선배의 이런 하소연에 그 아들에 대한 질책보다는 '선배의 방법이 잘못되었구나'하는 생각과 더불어 '나도 같은 방법으로 아이를 키우고 있지는 않나'하는 생각이 들어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많은 부모가 자녀의 모든 것에 깊숙이 관여한다. 자녀에게는 선택의 권한도 실패의 경험도 주지 않는다. 그리고 언제까지나 자녀를 옆에서 지킬 수 있을 것처럼 손을 잡고 끌어 당기기만 한다.

그러다 선배처럼 아이의 독립선언에 허탈해 하기도 한다. 차라리 선배의 경우는 나은 것인지 모르겠다. 결혼을 해서도, 나이 사십을 훌쩍 넘어서도 부모로부터 독립하지 못하는 자녀들이 많은 현실을 생각한다면….

최근 한 잡지에서 아시아 최고 스타로 우뚝 선 보아와 두 오빠들의 성장 이야기를 읽었다. 학창 시절 공부를 잘했던 이들은 각자의 분야에서 자신의 역량을 펼치고 있다. 모두 스스로의 선택이었다고 한다. 이들 부모님은 자녀들에게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맘껏 하게 했다고 한다. 일일이 간섭하기보다는 무엇이든지 자유롭게 선택하도록 하되, 주어진 의무는 반드시 지키도록 해 책임감과 독립심을 키우는 데 주력했다고 한다.

자녀를 품에 안으려고만 하는 부모들은 한번쯤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무엇이 옳은 방법인지, 아이를 위한다는 행동이 아이에게 독이 되고 있지는 않은지, 아이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지는 않은지.

당장 나부터 아이를 끌고 가던 손을 놓아야겠다. 그리고 아이 뒤로 한 발자국 물러나야겠다. 그러면 내가 가렸던 시야가 확 트이면서 아이도 많은 것을 자기가 찾아보게 되지 않을까.

위은실(주부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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