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카터 회고록|「신의를 지키며」…국내 독점 연재 <18>|캠프데이비드 산장의 13일 ⑦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캠프데이비드에서의 3일째 되는 날 하오에 우리가 다시 만났을 때 그 회담이 이번 회담에서 세 사람이 함께 모여 협상을 벌이는 마지막 자리가 될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다. 「베긴」 은 하오 회담이 시작되자마자 처음부터 이스라엘 측 기본입장, 즉 까다로운 문제들은 협상 테이블에 올리지 않겠다는 주장을 되풀이했다. 그는 시나이반도 문제와 정착지, 비행장문제 등은 군사지도자들에게 맡겨 견해차를 해결한 다음 각국 수뇌에게 보고하도록 하자고 제의했다.

<마치 웅변대회 방불>
「사다트」 는 즉각 그것이 시간낭비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이집트로서는 대통령의 특별한 정책방향지시 없이 국방장관이 협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그는 말했다.
「사다트」 는 이스라엘, 미국 또는 어떤 다른 나라라도 이집트 영토에 대한 군사지배를 절대로 허용할 수 없으며 이스라엘이 건설한 비행장도 이집트로서는 쓸모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스라엘이 철수할 때 이 비행장도 뽑아 가는 편이 차라리 좋겠다고 했다.
그때 「베긴」 이 티란해협(시나이반도 남단에 있으며 이스라엘과 홍해를 연결하는 전략 요충-주)을 국제수로로 개방하겠다는 약속을 지키겠느냐고 「사다트」 에게 물었다. 「사다트」 는 『물론입니다. 내가 이전에 그렇게 말한바 있으며 그 약속은 지킬 것입니다』 고 대답했다.
「사다트」 는 이어 이집트 국민이 평화를 위한 자신의 주도적 역할을 얼마나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있으며 또한 이스라엘과 밀고 당기는 식의 거래에는 그들이 어느 만큼 관심조차 없는가를 장황하게 웅변조로 설명했다.
그는 단호하게 선언했다. 『우리 국민은 국토나 주권에 대한 침략행위를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 「베긴」 수상이 이스라엘 정착촌들을 시나이반도에 존속시키고 이를 무력으로 지키겠다는 것은 이집트에 대한 명백한 모욕입니다. 본인은 우정과 공존의 모범을 보여 다른 아랍세계지도자들이 본받도록 하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그러나 그 대신에 본인에게 돌아온 결과는 무엇이었습니까. 본인은 아스라엘로부터는 극단적인 모욕을 받았고 다른 아랍지도자들로부터는 경멸과 비난의 대상이 됐읍니다.
이스라엘은 아랍국가들이 이스라엘과 평화를 이루려는 의도와는 어긋나는 태도를 고수해 왔습니다. 본인이 평화노력에 앞장선 것은 약해서가 아니라 힘과 자신에 바탕을 둔 것입니다.
본인은 캠프데이비드의 회담을 성공시켜 3나라와 3개의 다른 종교를 대표하는 우리 3지도자가 시나이 산에서 만나게 되기를 꿈꾸어 왔으며 또 지금도 그렇게 신께 기도하고 있읍니다.』 「사다트」 의 이 같은 발언은 「베긴」 과 나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 그의 말은 진심에서 우러난 것이었다. 「베긴」 은 시나이 산 위에서 우리 세 사람이 함께 만나자는 「사다트」 의 꿈이 이뤄지기를 바란다며 답변을 시작했다.
「베긴」 은 「사다트」를 예루살렘으로 초대하는데도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었다고 상기시켰다. 그는 「사다트」 가 불과 4년 전의 10월 전쟁 (73년) 때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하여 수 천명의 이스라엘 군을 죽인 적국의 사령관이었지만 이스라엘국민들은 그를 매우 호의적으로 맞아 평화를 갈구하는 진심을 .보여주었다고 말했다. 「베긴」 은 이어 시나이반도에 있는 얼마 되지 않는 이스라엘정착촌들이 이집트에 위협이 되지 않으며 이집트 주권에 대한 침략이 될 수 도 없는 것으로 그들 국민이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정착촌이 계속 말썽>
시나이 반도에는 13개의 이스라엘정착촌이 있었으며 인구는 2천여 명 정도였다. 이스라엘은 이 정착촌의 철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우겼다. 「사다트」 는 그가 원한다면 이집트 국민들이 이스라엘 정착촌 주민들을 이집트의 영구 거주자로 받아들이도록 할 수도 있었다. 시나이 정착촌 문제로 회담은 완전히 교착상태에 빠지는 듯 했다.
「사다트」 는 화가 치밀어 이제 우리가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다고 말했다. 그는 토의를 더 이상 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그로서는 회담이 끝난 셈이었다. 「사다트」 는 「베긴」 을 무시한 채 벌떡 일어나 나를 응시했다.
나는 낙심하여 이 시점에서 평화노력이 허물어지면 협상이 엉뚱한 결과를 낳게 될 것이라고 두 사람에게 황급히 설명했다.
나는 중동에서의 미국의 역할을 강조하고 현재상황에서 이 분쟁지역에 또 다시 전쟁이 일어난다면 쉽게 세계대전으로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두 사람에게 내가 그들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최소한 하루만 더 시간을 달라고 요청했고 그사이 내자신의 타협안을 고안해 그들에게 제시하겠다고 말했다. 나는 「베긴」에게 그가 만약 시나이반도 정착촌 문제 하나 때문에 평화협상을 거부한다면 이스라엘국민이나 크네세트 (이스라엘 의회) 가 그의 뜻에 따르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가 이스라엘 정착 민들을 이집트영토로부터 철수시킨다 하더라도 국민들에게 충분히 납득 가도록 설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나는 믿었다.
그러나「베긴」은 정착촌철거를 그의 국민이나 정부에 대해 설명할 길이 없다고 우겼다(우리는 이스라엘인들이 떠난 뒤에도 건물은 파괴하지 않겠다고 했는데도 그는 항상 「철거」라고 말했다). 「베긴」은 정착촌이 철수될 경우 자신의 정권은 몰락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베긴」 도 일어서 두 사람은 입구 쪽으로 걸어나갔다. 나는 그들 앞을 가로 막아섰다. 나는 그들에게 회담을 결렬시켜서는 안 된다고 촉구했으며 다시 한번 문제점들을 분석하여 타협을 성공시킬 수 있도록 나에게 기회를 달라고 요청하면서 『나를 믿으라』고 말했다. 「베긴」 은 즉시 동의했다. 나는 「사다트」 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도 끝내 고개를 끄덕였으나 두 사람은 아무말없이 헤어져 각자 숙소로 돌아갔다.
「사다트」 에게 이날 저녁 이집트대표단과 함께 만나자고 요청했다.
내가 회의를 주재했다.
「먼데일」 부통령, 「밴스」 국무, 「브라운」 국방장관, 「브레진스키」 보좌관이 동석했다.
『본인은 여러분들께서 지금 매우 낙담해 하고 계시다는 것을 잘 압니다. 오늘 우리가 논의한 문제는 시나이반도에 있는 이스라엘 정착촌 처리에 관한 것이었읍니다.
그것은 아마 가장 어려운 문제일 것입니다. 우리의 견해는 정착촌은 불법적이며 철수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점에는 여러분들과 우리는 같은 견해를 갖고 있읍니다.』
「사다트」 가 대답했다. 『친애하는 대통령각하. 「베긴」 그 사람은 본인이 예루살렘을 방문할 때까지 아무 말도 않고 있던 사람이예요.
본인은 기꺼이 국경을 개방하여 이스라엘 사람들과 문제들을 협의하려고 하며 다른 아랍대표들도 이 협의에 참여시킬 참이었읍니다.
그 사람은 정신이 나갔어요.
「베긴」 은 말 한마디마다 꼬투리를 잡아 철수조건을 내세워 땅을 차지하려고 하고 있어요. 「베긴」 은 평화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입니다.』
내가 다시 말을 꺼냈다. 『대통령각하, 「베긴」 수상은 거칠지만 솔직한 사람입니다. 과거에는 줄곧 매파였지만 그의 전임자들에 비하면 많이 나은 셈이지요. 시나이반도 지배는 이스라엘이 시작하지 않은 전쟁에서 얻은 것입니다. 이것이 「베긴」 수상의 관점이예요. 그의 목적중의 하나는 가자지구를 시나이와는 분리 처리해 정착촌으로 완충지대를 만든다는 것입니다.

<두 손으로 가로막아>
이제 여러분들께서 이스라엘을 위협할만한 주요 군사력을 시나이반도에 배치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으니 그들로서도 정착촌을 더 이상 보위해야 할 합법적인 근거가 없게 됐습니다. 우리가 그의 뜻에 따르지 않는다는 것을 그도 잘 알면서 현재까지는 버티고 있는 것입니다. 입장을 바꾸는 것은 그에게 괴로운 일일 것입니다. 비행장에 관해서는 이스라엘도 관할권을 넘겨줄 생각이 있고 또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요르단강 서안지구문제에 대해서도 납득할만한 처리방식을 찾도록 노력하겠읍니다.』
「사다」 가 말했다. 『정착촌을 철수시키는데 2년간의 말미를 주겠습니다』 나는 『시한문제는 좀더 유연성이 있어야 합니다. 2, 3년 정도라든가…』 라고 말하자 「사다트」 도 『좋습니다』 고 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