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익채 러시아기행 간찰 발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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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방극필·이승만·주시경 등과 함께 협성회를 조직. 근대화운동을 벌렸던 오운 이익채(1873∼1937년)의 「기행간찰」이 발견되어 학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 자료는 이익채의 자손인 길용씨(단국대 학군단 선임교관)집에서 발견되어 진동혁교수(단국대·국문학)가 입수해 공개한 것인데, 「기행간찰」은 l901년10월 러시아 주재 한국대사관 서기로 임명받고 서울을 출발한 이익채가 64일간의 해상·육상여행 끝에 임지에 도착하는 동안의 여정과 안부를 써 그의 모친인 평택림씨에게 보낸 간찰. 가로15·8㎝. 세로23·5㎝ 크기의 장지18?을 책으로 엮어 순한글로 썼는데 2백자 원고지 약30장 분량이다.
?운은 화륜선을 타고 우리나라를 출발, 황해와 남지나해를 거쳐 말레이지아·싱가포르를 지나 스리랑카의 항구인 콜롬보·아라비아해·홍해·수에즈운하를 통과하여 포세이드에 도착한 후 다시 흑해를 지나 러시아의 오데사에 도착, 그곳에서 기차를 타고 48시간만에 임지인 모스크바에 닿았다.
그는 이렇듯 멀고도 낯선 여정을 거치면서 곳곳의 풍물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싱가포르와 콜롬보 항구에 들른 그는 『일긔가 우리나라 삼복버덤 더웁삽고 초목이 무셩하와 삼사월을 홀연이 당하와 항구에 마차를 일행이 다 타고 유명지디와 각쳐 화원을 찾아. 여섯시 동안을 두루 구경하온즉 인물도 허다하옵고 층집이 조밀하고 경치됴혼대도 만히 잇사와 망망창해에 십여일 두고 륙디를 못보고 푸룬하날과 물결치난 바다 사이로 곤곤이 오다가 이곳에 와셔 이러케 번화하고 이러한 긔화이초를 볼 때에 한결 사람의 마암을 위로하여 깁부게』한다고 쓰고 있다.
홍해를 지나 수에즈운하를 지나면서는 『이곳을 떠나 십여일 두고 온즉 사람이 파노혼 바다가 잇삽난대 일홈은 슈에즈캐날이옵고 이곳은 홍해와 디중해 사이에 병목아지 갓흔 륙디가 쟝이 영국 리슈로 이백삼십팔리(죠션리수 거진 사백리)를 영국 덕국 아라사 법국 의대리 토이기 여섯나라 인군들이 츈염내여 숫한 돈을 내고 법국기사 레쉡스가 이 륙디률 파 바다 만드난 일을 맛허』 파놓았다고 기술.
또 수에즈운하 연변의 「야만인」들을 보고는 『이 조분바다를 하루동안 찬찬이 나온즉 좌우 해변에 애프리가 사람들이 배를 따라오며 구걸하난 거슬 보온즉 염소의 소래처럼 소래를 지르며 머리터럭은 가호로는 깍고 졍슈리에만 남겨두엇삽난대 맛치 말갈기처럼 껏칠하고 몸에는 보작이 갓횬 것으로 둘는 것도 잇사오며 엇던 놈은 이삼십된 어룬 따위가 벌거숭이로 뛰여오며 ,알수 업난 소래를 질으며 쫏차오난대 혹 배에 잇난 행적들 그 례의염치를 모로난 야만백셩을 불샹이도 녁이고 또 그놈의 하난 거동믈 보랴하야 헌옷 가지던지 떡이던지 담배갑이던지. 그놈에게 던져주면 됴와라 하야 두발을 모와 껑충 뛰며 제 볼기짝을 두손으로 쩔걱쩔걱 치면서 됴타난 소래를 질으고…』라 쓰고 있다.
러시아 항구인 오데사에 도착 기차를 타고 주지인 모스크바로 가면서는 『둣거 옷을 못닙으면 한대 나가지 못하옵더니 그 잇혼날아라샤 서울노 가난 화차를 타고 마흔 여덟시 동안을 오옵난대 즁간짐 와셔는 산에 눈이 싸이고 셜한풍이 불어 얼골과 손을 칼노 에이난듯 잠시도 밧게나셜 슈가 업삽고…』 하며 그 지방의 혹한을 묘사하고 있다.
진교수는 서구지방의 기행문으로 유길용의 『서유견문』(1895년)이 있으나 오운의「기행간찰」 또한 그 당시의 여행기록으로선 귀한 의미를 갖는다고 말하고, 특히 당시 외교관의 생생한 기록이란 점에서 주목된다고 지적했다.
김석하교수(단국대·국문학)도 다양한 기행노점이 관심을 끌며, 특히 러시아 방면의 기행기록으로선 이 자료가 처음인 것같아 흥미롭다고 말하고 서간문학 연구에도 귀중한 자료라고 설명했다. <이근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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