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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값이 아니라 주거비를 따져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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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김종수
김종수 기자 중앙일보 부장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김종수
논설위원

최경환 경제팀 출범 이후 반짝 살아날 듯하던 주택경기가 한겨울 맹추위와 함께 싸늘하게 식고 있다. 일부 분양아파트 시장이 활기를 띠고 있지만 대부분의 기존 주택 가격은 여전히 요지부동이고, 잠시 늘어나던 주택 거래도 뚝 끊겼다. 그사이 전세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았고, 그나마 나왔던 전세 매물은 자취를 감췄다. 전셋값이 집값의 70%를 넘어서면 매매수요로 전환된다던 부동산시장의 불문율은 이미 깨진 지 오래다. 서울에서는 전세가율이 80%를 넘어선 아파트단지가 속출해도 전셋값에 돈을 보태 집을 사겠다는 사람은 드물다.

 왜 그럴까. 원인은 한 가지다. 모두가 집값이 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집값이 오르지 않으면 주택을 소유해서 거주하는 자가주택의 거주비가 전세로 사는 것보다 비싸고, 그 주택을 전세로 내주면 집주인은 손해를 본다. 여기서 간단한 셈을 한번 해보자. 시가 10억원짜리 내 집에 사는 사람의 주거비는 그 돈을 금융상품에 투자했을 때 얻을 수 있는 기대수익이나 마찬가지다. 기대수익률을 5%로 잡으면 대략 연간 5000만원(월 417만원)을 주거비로 부담하고 사는 셈이다. 만일 이 집에 7억원의 전세금(전세가율 70%)을 주고 산다면 주거비는 연간 3500만원(월 292만원)이다. 한눈에 봐도 전세로 사는 게 백번 유리하다. 물론 전세로 살다 보면 2년마다 집을 옮기거나 전셋값을 올려줘야 하는 부담이 있지만 그걸 감안해도 주거비 부담은 현격하게 작다. 반면에 자가 소유의 경우 재산세와 유지보수비까지 더하면 주거비는 더욱 비싸진다. 전세 매물이 사라지고, 전셋값이 폭등하는 이유다. 순수하게 시장원리로만 보자면 전셋값이 집값과 같거나 오히려 높아야 정상이다. 집주인 입장에선 주택구입자금에 대한 기대수익에다 재산세와 감가상각비, 유지보수비를 합친 금액이 전세금의 운용 수익에서 나와야 수지를 맞출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전세 제도는 과거 주택 공급에 비해 수요가 많아 집값이 계속 오를 것이란 기대가 충만하고, 대출받기가 어려웠던 시절에 등장한 독특한 주택 임대차제도다. 전세를 끼고 집을 사두면 집값이 올라 (앞서 언급한) 주거비 차이를 상쇄하고도 남는 자본이득을 거둘 수 있을 때 비로소 성립하는 임대차 방식인 것이다. 그런데 전세제도의 대전제인 집값 상승에 대한 기대가 사라지고, 모두가 집값이 안 오른다고 생각하는 순간 전세 시장에는 급격한 수급불균형이 빚어지고 급기야 ‘전세대란’이니, ‘미친 전세’니 하는 기현상이 벌어지는 것이다. 전세가율의 상승은 집값 상승에 대한 기대감의 하락과 정확히 맞물린다.

 주택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를 접은 집주인들은 주택 보유에 따른 손실을 줄이기 위해 전세를 월세로 전환하고 있다. 처음엔 반전세에서 시작해 점차 월세 비중을 높이는 방식으로 주택투자금에 대한 기대수익을 실현하는 것이다. 실제로 시중에는 전세물량은 급감하는 반면 월세공급 물량은 꾸준히 늘고 있고, 월세 값도 떨어지는 추세다. 아마도 월세 값은 연간 자가주택 거주비(기대수익)를 월 부담액으로 환산한 어떤 균형점으로 수렴하게 될 것이다. 집값의 변동이 없다고 가정하면 자가주택이나, 전세나 월세가 모두 주거비로 환산하면 부담이 일정한 수준에서 대체가능한 주거의 형태란 얘기다.

 그동안 최경환 경제팀의 주택정책은 각종 규제를 풀어 주택 전세 수요를 매매 수요로 전환하면 주택 거래가 늘고 집값도 오를 것이란 구도에서 추진됐다. 과거에 흔히 쓰던 전형적인 경기부양책이다. 그러나 이제는 사정이 달라졌다. 고령화와 저출산으로 인구가 줄고 주택 수요도 줄어든다는 걸 다 안다. 이 판에 부양책을 쓴다고 집값이 오를 리가 없고, 집값이 오르지 않으면 주택수요는 더 줄어든다. 빚을 내서라도 집을 사게 하겠다는 주택정책은 실패했다. 앞으로도 그런 식의 주택정책은 통하기 어렵다. 정부는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부동산 관련 법안만 통과되면 주택경기가 활기를 띨 것으로 기대하는 모양이지만 주택시장의 구조 변화를 거스르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주택정책의 목표 자체를 바꿀 필요가 있다. 집값 띄우기를 포기하는 대신 국민들의 주거 안정에 주택정책의 초점을 맞추라는 얘기다. 집값의 등락만 쳐다볼 게 아니라 실질적으로 주거비 부담을 덜어주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내 집 마련’이란 환상에서도 깨어나야 한다. 내 집이든, 남의 집이든 값싸게 안정적인 주거를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 이미 시장에선 실질 주거비가 낮은 쪽으로 수요가 옮겨가고 있다. 전세대란과 월세 전환은 주택시장이 실질 주거비 부담(공급자 쪽에선 실질 임대소득)을 기준으로 재편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자면 박근혜 대통령이 언급한 기업형 민간 임대주택뿐 아니라 개인 임대사업자들도 적극 육성할 필요가 있다. 특히 집 한 채에 발목이 잡혀 있는 은퇴·노후세대들이 활발하게 임대사업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터줘야 한다. 새로운 금융기법을 사용한 임대주택의 증권화와 유동화 방안도 적극적으로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김종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