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일의 인사이드 피치] 209. 조성민, 관리하기 나름이라니까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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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진난만. 조성민(32)이 흰 이를 활짝 드러내고 웃을 때, 웬만한 사람이라면 그 따뜻해 보이는 웃음을 외면하기 어렵다. 눈꼬리가 살짝 처진 그 눈에서 나오는 선한 느낌과 장난스러운 표정은 냉정한 승부사와 거리가 멀다. 그의 성격도 비슷하다. 남에게 싫은 소리를 못하고, 큰 목소리로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다.

그런 그가 자신을 강하게 내세운 적이 있었다. 지난해 6월 30일이었다. 2차 지명 대상자로 드래프트에 나온 그는 가까운 지인에게 "내가 지명되면 그 결과를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로 알려 달라"고 부탁했다. 지명 장소에 나가기도 부끄럽고, 전화로 결과를 확인하기도 어색하다는 이유였다. 그의 성격다웠다. 그러나 그날 그의 휴대전화에는 문자메시지가 켜지지 않았다.

그는 "아쉽다. 그러나 운동을 계속해 몸을 만들 것이며 자신감이 생기면 외국에 나가서라도 다시 도전하겠다"고 강하게 말했다. 목소리의 톤도 꽤 높았다. 그날 8개 구단이 그를 지명하지 않은 이유는 한결같았다. "조성민은 팀 분위기를 해칠 우려가 있다. 유니폼을 입혀주기가 부담이 된다"는 것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한화가 자세를 바꿨다. 한화는 조성민에게 '베팅'을 했다. 5000만원을 줬고, 기회를 줬다. 조성민은 그 기회를 잡았고, 한화의 유니폼을 입었다. 그리고 바로 이틀 전, 한 편의 드라마를 만들었다. 승리투수가 된 것이다.

그때 그의 천진한 웃음을 다시 보았다. 불펜에서 몸을 풀던 그가 신경현의 역전 홈런이 터지는 순간 곁에 있던 동료와 손을 마주치며 환하게 웃었다(사진). 그 곁에 정민철.차명주 등 동기들이 있었고, 선배 송진우가 있었다. 그들은 하나로 느껴지기에 충분한 표정과 몸짓을 보였다. 모두 진지하게 조성민의 재기를 원했고 성공을 바랐던 것이다.

여기서 나머지 구단의 오산이 드러난다. 조성민이 팀워크를 해치는 것이 아니라 다스리기에 따라 플러스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제 조성민 스스로의 '관리'가 남았다. 그가 순간의 달콤함에 우쭐하거나 얄팍한 스타의식에 젖어버리면 아직도 분위기를 망칠 염려는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1승만으로도 이미 승부는 결정됐다. 한화와 7개 구단이 벌인 '조성민 게임'은 한화의 KO승이다.

이태일 야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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