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비즈] 얍 ! 마술사 영업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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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 이재규 대리(左)가 서울 홍제동 대성병원에 입원해 있는 어린이들을 상대로 마술을 보여주고 있다. 신인섭 기자

다국적제약 업체인 한국아스트라제네카 대전 지점의 영업 담당 이재규(31) 대리는 거의 매일 마술공연을 한다. 활동무대는 그가 담당하는 충청지역 병원이다. 병원 복도에서 환자와 그 가족들을 대상으로 묘기를 보인다. 그래서 그는 늘 가방에 신약 설명서와 함께 트럼프, 특수 동전 등 마술 도구들을 넣고 다닌다.

이 대리는 "환자들도 즐거워하니까 내가 더 기쁘다"고 말했다. 병원에서 의사들을 모아 놓고 신약 효능을 설명할 때도 이 대리는 마술부터 시작한다. 다짜고짜 약 얘기를 먼저 꺼내면 의사들이 따분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술로 일단 시선을 잡아 놓으면 자신의 얘기에 주목하는 정도가 달라진다고 그는 설명했다.

이 대리는 병원이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여는 건강 강좌에도 마술 강사로 나선다. 대가는 받지 않는다. 올해 어린이날에는 대전의 한 병원장 부탁을 받고 대전 시민회관에서 어린이 환자와 가족 120명에게 한 시간 동안 단독 공연을 했다.

그런 식으로 병원.의사.환자들과 가까워져서인지 영업 실적도 뛰어나다. 지난해 한국아스트라제네카 내에서 영업 실적 상위 5%에 들었다.

이 대리는 2002년 아스트라제네카에 입사했다. 마술은 입사 전에 취미 삼아 익혔다. 주로 인터넷을 뒤져 기초 마술 지식을 다졌다. 그러다 2003년 하반기에 마술학원에서 본격적으로 기량을 닦았다. 신년 파티때 장기를 뽐내기 위해서였다. 이 회사는 직원의 취미생활 비용은 지원한다.

이 대리는 요즘은 매주 토요일마다 장애인 보호시설이나 홀로 사는 노인들을 찾아가 마술을 보여 준다. 오는 28일에는 경기도 가평군 가일미술관에서 한국아스트라제네카가 암환자 가족과 자녀들을 초청해 여는 '희망샘 기금 전달식' 행사에도 나설 예정이다. 아스트라제네카는 이 자리에서 30여 암환자의 자녀들에게 각 120만원씩의 장학금을 전달할 계획이다. 이 대리는 "몸의 병은 의사가 고치지만, 나는 마술로 환자와 가족들의 마음의 병을 덜어준다는 생각으로 마술을 한다"고 말했다.

아스트라네제카는 세계 10대 제약사 중 하나로 본사는 영국에 있다. 한국 법인은 지난해 105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권혁주 기자 <woongjoo@joongang.co.kr>
사진=신인섭 기자 <shini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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