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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구를 늘리는 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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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경국대전' '이전(吏典)''고과조(考課條)'에 수령칠사(守令七事)란 것이 있다. 지방의 수령이 실천해야 할 농상성(農桑盛).호구증(戶口增).학교흥(學校興).군정수(軍政修).부역균(賦役均).사송간(詞訟簡).간활식(姦猾息) 등 일곱 가지 사항이다. 약간 풀어보면 이런 것이다. 의식(衣食)의 근거인 농사와 양잠이 잘되게 할 것, 인구가 늘어나게 할 것, 학교가 설치되어 교육이 흥성토록 할 것, 군정(軍政) 곧 병역관계 사무가 잘 수행되도록 할 것, 백성들에게 부역의 부과가 형평성 있게 이루어지게 할 것, 재판이 복잡하게 벌어지지 않게 할 것, 도적이나 세력 있는 자가 함부로 날뛰는 일이 없도록 할 것이다. 간단하지만 현대의 행정영역 전체에 해당한다.

▶ 강명관 부산대 교수·한문학

연말 인사고과 철이 되면 관찰사는 칠사를 기준 삼아 수령의 행정 실적을 평가해 왕에게 보고하였다. 지방 수령으로 부임하는 사람은 임금 앞에서 칠사를 외어야 했고, 외지 못하거나 내용을 숙지하지 못했을 경우 부임이 취소되기도 하였다. 조선 성종 때의 일이다. 신창현감(新昌縣監) 김숙손(金淑孫)이 부임 전 성종에게 하직인사를 올리자 성종은 칠사를 물었고 무과(武科) 출신인 김숙손이 고개를 숙인 채 머리만 긁적였다. 성종은 "칠사를 잘 알고 있다 해도 백성을 다스리기가 어려운데, 칠사도 모른다니!" 하면서 그 자리에서 파직하였다. 칠사를 외지 못하여 벼슬까지 떨어졌으니, 칠사의 중요성을 미루어 짐작할 만하다.

왜 뜬금없이 칠사를 들먹이는가 하면, 그중에 포함된 호구증이란 말 때문이다. 호구가 불어나는 것, 즉 인구의 증가야말로 전근대 사회의 행정이 추구하는 최고의 목표였기 때문이다. '맹자' '양혜왕상(梁惠王上)'을 보면, 양혜왕이 맹자에게 인구에 대해 묻는 장면이 나온다. "과인은 마음을 다해 나라를 다스리고 있습니다. 하내(河內) 지방에 흉년이 들면 하내 지방 백성을 하동(河東) 지방으로 이주시키고, 하동 지방의 곡식을 하내 지방으로 옮겨줍니다. 하동 지방에 흉년이 들어도 꼭 같이 합니다. 이웃나라의 정치를 보면 과인처럼 마음을 쓰는 사람이 없는데도, 이웃나라 백성들이 줄어들지 않고 과인의 백성이 불어나지 않는 것은 어쩐 일인지요?" 맹자의 답인즉 이렇다. 당신은 정치를 이웃보다 잘하고 있다고 하지만 오십보백보다. 제발 백성을 인간으로 대우하는 정치를 펴라, 그러면 백성들이 몰려들 것이다.

양혜왕은 백성이 와글와글하는 세상을 꿈꾸었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백성을 위한 것이었을까. '맹자'를 읽어보건대, 그는 모든 백성이 인간답게 사는 세상을 꿈꾼 것이 아니라 지배계급을 위해 생산하는 인간이 늘어나고, 지배계급의 욕망을 위해 전쟁을 수행하는 군인이 많아지는 세상을 꿈꾸었던 것이다. 그에게 백성은 지배계급을 위한 도구에 불과했던 것이다. 양혜왕만 그런 것이 아니다. 가까이로 조선조의 통치계급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칠사의 호구증 역시 지배층을 위한 생산계급의 수를 늘리고자 하는 의도를 갖고 있었던 것이다.

인구가 줄어든다고 정부는 걱정이 태산이다. 한때 둘도 많다며 산아제한을 외치던 정부에서 인구를 늘리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니, 정말 세상 많이 변했다. 저출산의 이유는 여럿이겠지만, 근본은 하나로 귀결된다. 육아와 교육의 과다한 비용 때문이다. 재산이 넉넉한데 왜 아이를 적게 낳겠는가. 가난한 사람이 아이를 많이 낳으면 그 아이는 가난에 허덕이다가 현대판 노비가 되기 십상이다. 양혜왕이 곡식을 옮겼던 미봉책처럼 출산장려금 몇 푼 쥐여주면서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말고, 근본적으로 국민 전체가 골고루 넉넉히 사는 정책을 펴야 할 것이다. 그러면 낳지 말래도 아이를 낳고 키울 것이다. '호구증'이 절로 이루어질 것이다.

강명관 부산대 교수·한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