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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창원 박사와 함께하는 '어린이 프로파일러 설록의 사건 일지' <4> M이 남긴 또 다른 단서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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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오은우

“아얏”

꿀잠을 자던 대홍이가 비명을 질렀다. 아무리 깨워도 일어나지 않자 스님이 죽비 세례를 준 것이다.

“아유, 자는 사람을 몽둥이로 막 때리면 어떡해요? 그러다 죽을 수도 있다고요!”

“죽비는 속이 빈 대나무 자다. 소리만 크고 상처를 주지 않는다. 죽비에 맞아 죽은 사람은 아직 아무도 없다. 네가 역사상 첫 사례가 되어보려느냐?”

스님의 무서운 얼굴과 위엄 있는 태도에 기가 꺾인 대홍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이미 새벽 ‘도량석’을 준비하고 있던 세 사람과 합류하니 새벽 3시를 조금 넘긴 시간, 그렇게 ‘어린이 템플스테이’ 첫날이 시작되었다. 도량석에 이어 새벽 예불, 청소, 아침 공양과 불경 공부 등 힘들어도 재미있었다. 보리밥에 나물 반찬만 나오는 절 밥도 맛있었다. 하지만 설록의 얼굴은 어두웠다. 도무지 ‘보물’의 실마리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누가, 왜 가짜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을 만들어 황령사로 유인했는지도 의문이었다.

도대체 ‘M’은 누구일까? 스님은 무엇을 얼마나 알고 있으며, ‘보물’과 어떤 연관이 있을까? 홍주가 던진 ‘고려시대 책’이야기에 스님이 급 브레이크를 밟았던 기억을 더듬던 설록의 어깨가 갑자기 따끔해지며 ‘딱’ 소리가 공기를 갈랐다. 스님의 죽비가 이번에는 딴 생각에 빠진 설록을 습격한 것이다.

“잡념, 상념, 쓸데없는 생각이 걱정과 고통의 근원이니라. 불경을 공부하는 시간엔 불경에 집중하며 마음을 씻어야 한다.”

대홍이는 자기가 맞은 듯 인상을 찌푸렸고, 홍주는 가련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진혁이는 ‘쌤통이다’라고 말하는 듯한 미소를 띠었다.

모든 접촉은 흔적을 남긴다

오후 불경 공부가 끝난 뒤 2시간의 자유가 주어졌다. 대홍이는 잠이 부족하다며 방으로 들어갔고 진혁이는 운동이 부족하다며 칠봉산으로 올라갔다. 설록은 황령사 경내를 조사해 보기로 했다. 절 입구의 종 모양 석탑으로 향하는 설록에게 홍주가 따라 붙었다. 아래는 받침대처럼 연꽃 잎이 새겨져 있고 전체적으로 포탄 같은 모양에 이끼가 많이 끼어 있었다.

“여기 글씨가 새겨져 있어!”

홍주의 외침에 나뭇가지에 앉아 있던 새가 놀라 날아가는 바람에 눈덩이가 설록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그 모습에 홍주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아니, 억지로 참으려다 오히려 더 웃음이 터져 나왔다.

“벽·허·당!”

그때, 뒤에서 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홍주는 웃음을 멈췄고, 설록은 눈을 털어내던 동작을 멈추고 돌아봤다. 스님이었다. 가까이 다가와 손짓을 하는 스님을 따라 자세히 들여다 보니 碧, 虛, 堂 세 개의 한자가 새겨져 있었다.

“부도는 원래 부처님을 뜻하는 ‘불타(佛陀)’에서 유래한 말로, 깨달음의 경지가 높은 스님들이 돌아가신 후 그 몸에서 나온 ‘사리’를 보관하는 탑을 뜻한다. 대개는 불국사 다보탑이나 석가탑처럼 탑 형태로 만들었지만, 고려 말에서 조선 초 사이에 이것처럼 종 모양으로 생긴 ‘석종형 부도’가 만들어졌단다.”

스님의 이야기를 듣던 홍주가 질문을 던졌다.

“그러면 새겨진 저 글씨, 벽허당은 무슨 뜻인가요?”

“좋은 질문이다. 하지만, 정답은 모른다. 아마도 조선 초기 황령사에서 입적하신 고승의 이름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 사이 설록은 어른 키 높이인 부도의 구석구석을 관찰했다. 설록이 찾으려는 것은 흙 색깔이 다르거나, 풀이 뽑혀져 있거나, 이끼가 벗겨진 흔적이었다. 도둑맞은 ‘고려시대 보물’인 책이 숨겨져 있을 장소를 찾기 위해서다. 설록의 머릿속에는 과학수사의 아버지 에드몽 로카르(Edmond Rocard)가 남긴 “모든 접촉은 흔적을 남긴다”는 원칙이 맴돌았다. 그런 설록의 마음을 읽은 듯 스님이 불쑥 말했다.

“보물찾기를 하느냐?”

“보물 찾기는요, 쟤는 원래 모든 걸 관찰해요. 한마디로 관찰병이죠, 관찰병. 하하하”

홍주가 급한 불을 끄려는 듯 너스레를 떨었다. “관찰병이라, 불교에는 관심법이란게 있단다. 과거에 TV 드라마 ‘태조 왕건’에서 궁예가 사람들 마음을 꿰뚫고 조종하는 방법으로 잘못 소개되어 오해가 많은 수련법이지. 진정한 관심법은 다른 사람이나 사물을 관찰해서 비밀을 알아내는 것이 아니란다.”

스님은 잠시 고개를 돌려 절 뒤 칠봉산을 바라보았다. 홍주가 스님의 침묵을 참지 못하고 질문을 했다.

“그럼 진정한 관심법은 뭐예요?”

홍주의 질문에 고개를 돌린 스님의 얼굴에는 무섭게 생긴, 뭔가 의심스럽던 이전 모습과는 전혀 다른 인자한 부처님 같은 미소가 감돌았다.

“진정한 관심법이란 자기 자신의 내면을 통찰하고 돌아보는 것이란다. 내 안에 있는 진실한 법의 정신과 도의 마음을 찾아내 깨달음의 길로 나아가는 것이지.”

고개를 갸우뚱하는 홍주 옆에서 설록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세상 어딘가 진리가 있다며 찾아 나서는 것도 부질없고, 다른 사람을 이기고 부귀영화를 차지하려는 것도 부질없고, 진정한 진리는 내 안에 있으니 모든 잡념과 욕심을 물리치고 본래의 순수한 내 마음으로 돌아갔을 때 비로소 진리를 깨우칠 수 있다, 이런 말씀이시죠?”

스님은 눈을 크게 뜨고 설록에게 감탄한 듯 고개를 끄덕였고, 홍주는 역시 설록이라며 탄성을 질렀다.

칠봉산 조자룡 굴에서 발견한 비밀의 숫자

세 사람은 이야기를 나누며 법당 쪽으로 걸었다. 아미타불과 관음, 대세지 등 삼존에 대한 스님의 설명은 재미있었다. 평생 도를 닦아 부처가 된 ‘아미타불’은 극락에서 완전한 지혜와 무한한 자비로 중생, 즉 세상 사람들을 구제한다. 그리고 아미타불의 왼쪽에서 중생의 아픔과 괴로움을 들어주는 ‘관음(혹은 관세음)보살’, 오른쪽에서 고통에 빠진 중생을 도와 깨우침을 얻게 해주는 ‘대세지보살’이 조수 겸 비서 역할을 한다는 설명이었다. 불교 이야기만 나오면 사람들이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스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법당에 다다랐을 때였다.

“얘들아! 큰 일 났어, 큰 일!”

평소 무척 침착한 진혁이가 산길을 달려 내려오며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홍주가 더 큰 소리로 진혁에게 근육 다친다며 뛰지 말라 외쳤다. 들리지 않는 듯 달려오는 모습에 설록도 합세해 소리쳤다. 그제서야 진혁이 속도를 조금 늦췄다. 가쁜 숨을 몰아 쉬며 다가온 진혁은 스님과 아이들을 번갈아 보며 주저했다. 홍주의 재촉에 떠밀리듯 진혁이 뒷머리를 긁적이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

“아니, 그냥, 스님이 안 계신 줄 알고, 호랑이 봤다고 뻥칠려고 했는데, 스님이 계셔서……”

평소와 다른 모습에 놀라고 걱정했다가, 황당한 설명에 화가 난 홍주가 진혁의 배에 주먹을 날렸다. 헉 소리와 함께 진혁이 주저앉았다. 여학생이지만 태권도 3단에 복싱을 2년째 수련 중인 홍주의 펀치는 파괴력이 컸다.

“어허, 신성한 경내에서 폭력을 쓰다니. 홍주는 벌로 불경 공부 1시간 추가다.”

스님이 홍주를 나무랐다. 설록이 쓰러진 진혁을 일으키며 홍주에게 눈짓을 했고, 세 어린이는 스님에게 합장 인사를 한 뒤 대홍이가 자고 있는 방으로 갔다. 낮잠을 달게 자던 대홍은 홍주가 ‘죽비’라고 소리치자 벌떡 일어났다. 진혁이의 얘기는 놀라웠다. 절 뒤 칠봉산을 오르던 진혁은 ‘조자룡 굴’이라는 표지판을 발견했다. 호기심에 들어가보니 한쪽 모퉁이에 커다란 바위가 있고, 그 옆에 나무판이 하나 세워져 있었는데, 거기에 ‘284 - M -’ 이라고 새겨져 있었다는 것이다. 처음엔 무심코 지나쳤다가, 버스 안에서 들은 ‘사라진 보물’과 대신 남겨진 숫자 이야기를 떠올린 것이다.

“순간, 소름이 쫙 돋더라. 혹시 잘못 봤나 하고 다시 돌아봐도 ‘284 - M -’이라고 적혀 있었어. 그때부터 누가 지켜보는 것 같고, 무슨 소리가 들리는 것 같고, 엄청 무서워져서 막 뛰어온 거지.”

설록이 말을 이었다.

“그런데, 와 보니까 스님이 같이 계셔서 얼른 엉뚱하게 둘러댔고, 홍주는 그것도 모르고 펀치를 날리고…”

이야기를 듣던 대홍이는 잠이 확 달아난 듯 눈을 크게 떴고, 오해하고 주먹질을 한 것이 부끄러워진 홍주는 얼굴이 빨개졌다. 숫자 ‘284’는 M이 남긴 것일까? 그렇다면 무슨 의미일까?

등장인물 소개

나설록 도일초 6학년. 다섯 살 때 참혹한 살인사건으로 부모와 누나를 잃고 혼자 살아남았다. 이는 아직 범인이 검거되지 않은 미제사건으로 남아있다. 당시 서울경찰청 소속 프로파일러였던 표 박사가 요양원에 있던 설록의 법적 친권자인 할아버지 동의를 얻어 ‘후견인’ 자격으로 설록을 데려와 연구소에서 지내게 했다. 어린 나이에 겪은 엄청난 충격(트라우마)으로 인해 또래에 비해 조용하고 우울한 성격. 어려서부터 연구소에서 훈련받은 덕에 비상한 두뇌 회전과 추리능력, 범죄심리와 수사기법에 대한 탁월한 식견을 갖추고 있다.

차홍주 설록이 표 박사와 함께 살게 된 이후 줄곧 같은 학교 같은 반이었던 단짝 친구. 부모가 모두 경찰관. 처음에는 다른 아이들처럼 우울하고 혼자 있기 좋아하며 가끔 사소한 일에 버럭 화를 내는 괴팍한 성격의 소유자 설록을 피하고 싫어했다. 하지만 설록의 사정을 아는 부모님의 꾸준한 설명과 설득으로 지금은 단 하나밖에 없는 설록의 친구가 됐다.

마대홍 설록과 홍주의 절친. 키 162cm, 몸무게 65kg의 큰 체구지만 보기와 달리 마음이 여리다. 다정한 인사말 한마디 듣지 못하면서도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줄곧 설록을 도운 든든한 친구다. 최근 부모님의 지나친 학구열로 학원 뺑뺑이를 도느라 설록·홍주와 함께 놀지 못하는 것에 불만이 많았다.

하진혁 홍주의 절친. 까칠하고 예민한 성격의 설록을 싫어했지만 털털하고 마음씨 고운 홍주 덕에 설록과도 친구가 됐다. ‘천사의 집’ 보육원생으로 희망FC의 주전 스트라이커다. 엄마를 찾겠다는 일념으로 축구에 올인한 축구 천재다.

표창원 박사는… 1966년생. 범죄심리학자. 탐정 셜록 홈스에 매료돼 경찰대학에 진학했다. 화성 연쇄살인 사건을 경험하고 전문적인 범죄수사를 배우기 위해 영국으로 유학, 1997년 엑서터 대학에서 범죄학 박사를 받았다. 한국 최초 범죄심리분석관으로 활동하다 2001년 경찰대 교수로 임용, 2012년까지 재직했다. 퇴직 이후표창원의 범죄과학연구소를 열고 범죄심리학에 관한 연구를 활발히 펼치고 있다.

명탐정 셜록 홈즈를 도와 종횡무진 사건을 해결했던 최고의 파트너 왓슨을 기억하시나요. 소년중앙은 표창원 박사를 도와 사건을 해결할 주니어 왓슨을 찾습니다. 격주로 연재되는 표창원 박사의 ‘어린이 프로파일러 설록의 사건 일지’를 읽고 ‘도전 프로파일러 미션’에 응모하세요. 정확한 추리로 정답을 맞힌 독자에게는 내년 1월에 열릴 ‘표창원의 CSI 프로파일링 체험전’에 주니어 왓슨으로 참여할 기회를 드립니다.

도전! 프로파일러 두 번째 미션 칠봉산 조자룡 굴 앞에서 발견한 ‘284-M-’의 비밀은 무엇일까요. 추리한 내용과 함께 이름·학교·학년·연락처를 적어 소년중앙 e메일(sojoong@joongang.co.kr)로 12월 10일까지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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