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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판 ‘북수단의 공주’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과 딸 에밀리가 미국 버지니아주 애빙던에서 가족이 디자인한 북수단 왕국의 국기를 선보이고 있다.

미국인 제러마이어 히튼은 지난 7월 아프리카 사막의 주인 없는 땅에 왕국을 세웠다는 소식으로 인터넷을 떠들썩하게 했다. 그는 그후 자신의 삶이 그렇게 많이 달라지진 않았다고 말했다.

세 아이의 아버지로 버지니아주 애빙던에 사는 히튼은 여전히 광산보안 전문회사를 운영한다. 그의 부인 켈리 오스본-히튼도 전과 다름없이 중학교 교사로 일한다. 아이들 역시 여전히 애빙던의 학교에 다닌다.

하지만 뭔가 달라지긴 했다. 그의 일곱 살짜리 딸 에밀리(히튼이 주인 없는 땅을 찾아 왕국을 세운 이유는 공주가 되고 싶다는 딸의 소원을 이뤄주기 위해서였다)는 길을 지나갈 때 가끔씩 알아보는 사람들이 생겼다. 그리고 히튼에게는 매니저와 탤런트 에이전트가 생겼다.

다큐멘터리 ‘슈퍼 사이즈 미’와 ‘그레이티스트 무비 에버 솔드’를 제작한 모건 스펄록 감독이 히튼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영화를 만들 계획이기 때문이다. 스펄록이 운영하는 워리어 포이츠 프로덕션 스튜디오와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가 공동 제작할 예정이다. 이 소식은 데드라인 할리우드(미국의 영화 전문 웹진)가 최초로 보도했는데 작품의 잠정적인 제목은 ‘북수단의 공주’다. 데드라인에 따르면 스펄록은 자신의 매니지먼트를 맡고 있는 알룩 그룹의 리처드 알룩과 함께 이 영화를 제작할 생각이다.

히튼은 지난 7월 이후 자신의 삶에 대해 “오랜 시간이 걸린” 영화 계약 협상을 제외하곤 정상적으로 진행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의 사명은 여전히 바뀌지 않았다. 그는 가족과 함께 새로운 왕국의 지도자가 되기를 희망한다. 현재 누구도 영유권을 주장하지 않는 이집트와 수단 사이의 땅 2060㎢를 말한다.

지난 6월 16일 히튼은 공주가 되고 싶다는 딸 에밀리의 소원을 이뤄주려고 ‘비르 타윌’이라고 불리는 그 땅에 찾아갔다. 1902년 이후 이집트나 수단 중 어느 쪽도 이 땅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지 않았다. 히튼은 지난 7월 뉴스위크와 가진 인터뷰에서 “그곳은 지구상에서 아무도 원치 않는 먼지투성이 오지”라고 말했다. 그는 그곳을 ‘북수단 왕국’으로 명명했다.

히튼은 미국으로 돌아온 뒤 페이스북에 자신의 여행과 새 왕국에 대한 포스트를 올렸다. 그는 그 포스트를 올린 뒤 세계 각지 뉴스매체와 200건 이상의 인터뷰를 했으며 지금도 인터뷰 요청이 계속 들어온다고 말했다. “언론의 관점에서 본다면 모든 일이 완벽하게 유기적으로 진행됐다”고 히튼은 말했다.

히튼의 페이스북 포스트가 인터넷을 떠들썩하게 한 지 며칠 뒤 스펄록의 조수가 페이스북을 통해 그에게 연락을 해왔다. 그러고 나서 24시간도 안 돼 히튼은 스펄록과 직접 통화했다. 스펄록은 영화가 아직 개발 초기 단계에 있다는 이유를 들어 이 기사를 위한 인터뷰 요청을 거절했다.

“모건은 이 이야기를 영화로 만드는 일을 아주 멋지게 해낼 것 같다”고 히튼은 말했다. “잘 되면 영화가 3~4년 안에 제작될 듯하다. 디즈니가 이 영화에서 과학에 애정을 가진 어린이들에게 초점을 맞추면 좋겠다.” 히튼은 자신의 부인 켈리가 영화에서 남편의 역할을 어떤 배우가 맡게 될지 신경을 많이 쓴다고 말했다. 그녀가 희망하는 배우 중엔 조지 클루니, 매튜 매커너히, 채닝 테이텀 등이 포함됐다. 또 앤 해서웨이의 팬인 히튼은 자신의 부인 역할을 그녀가 맡아주기를 바란다.

식민주의인가 동정심인가?

히튼이 비르 타윌에 북수단 왕국의 깃발을 꽂고 그 앞에 서 있다(왼쪽), 비르 타윌의 위치 (지도의 동그라미 친 부분).

히튼은 자신의 왕국 이야기가 알려진 뒤 일각에서는 현대판 식민주의라는 비난이 쏟아졌다고 뉴스위크에 말했다. 그는 자신이 인종차별적인 렌즈를 통해 세상을 보지 않는다고 주장하며 그런 비난을 들었을 때 매우 놀랐다고 말했다.

“아프리카 대륙에 대해 ‘식민주의’라는 말을 사용할 때는 그 안에 인종차별주의라는 의미가 내포돼 있다. 그 역사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다.” 히튼이 말했다. “하지만 난 아프리카의 이 지역이 오랫동안 남극이 그래 왔듯 누구의 통치도 받지 않으며 아무도 살고 있지 않다는 사실 또한 잘 안다.” 남극은 공식화된 중앙정부가 없으며 1959년의 남극조약에 의해 관리되고 있다.

“[비르 타윌에는] 통치할 인구가 없고 이용할 자원도 없다. 따라서 사람들이 내가 그곳에서 한 일을 뭐라고 정의할지 어려움을 겪는 듯하다. 나 역시 내가 한 일을 정확히 정의하지 못하겠다.” 히튼이 말했다.

하지만 뉴스위크에 그 지역의 역사를 이야기해준 스미스대의 수단 전문가 겸 영어 교수 에릭 리브스는 비르 타윌이 잠재적인 위험성을 지니고 있다고 말한다. 1899년 당시 이집트와 수단을 식민 지배하던 영국은 두 나라 사이의 경계선을 북위 22도선을 기준으로 한 직선형으로 조정했다. 하지만 3년 뒤인 1922년 영국은 국경선을 다시 조정해 비르 타윌에 인접한 삼각형 지대 할라입 트라이앵글을 수단에 귀속시켰다. 따라서 대다수 지도에는 할라입 트라이앵글이 수단 영토로 돼 있지만 이집트는 계속 이 지역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며 실효지배 해왔다. 리브스에 따르면 만약 이집트가 할라입 지방을 다시 자국에 귀속시키려 할 경우 비르 타윌도 영유권 분쟁에 휘말릴 위험이 있다.

“비르 타윌이 할라입 트라이앵글과 같은 국경선 상에 위치한다는 사실이 이 지역을 잠재적인 분쟁 지대로 만든다”고 리브스가 이메일 인터뷰에서 말했다. “현재 이 지역에 대해 누구도 영유권을 주장하지 않는다고 해서 미래에도 그러라는 법은 없다. 그곳에 귀중한 자원이 묻혀 있든 아니든 이 지역의 미래는 수단과 이집트의 관계에 달려 있다. 히튼의 왕국은 한마디로 터무니없는 꿈에 불과하다.”

대중의 반응과 명예 공주

히튼은 비르 타윌을 주변 지역의 식량안보 문제 해결을 위한 농업 수단 개발에 이용하고 싶어 한다. 그는 자신의 과학적 비전이 영화에서 얼마만큼 보여질지 잘 모른다. 디즈니와 스펄록과 알룩이 스토리를 결정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북수단 왕국은 100% 재생가능한 에너지를 사용해 100% 에너지 효율성을 유지할 것”이라고 히튼은 말했다.

히튼은 북수단 왕국이 태양 집열판과 풍력 에너지를 이용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리고 국가 개발 유형과 관련해 테슬라 모터스의 CEO 엘론 머스크와 버진 그룹의 설립자 리처드 브랜슨을 롤 모델로 삼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머스크와 브랜슨의 벤처 기업들이 연구개발 자금 조달의 측면에서 제3의 길을 택한 좋은 예라고 말했다. 정부나 민간 주도가 아닌 자선사업가들의 지원을 받아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방식이다.

히튼은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북수단 개발 자금을 마련하고자 한다. 그는 크라우드펀딩 사이트 인디고고에서 캠페인을 진행할 계획이다. 사람들은 돈을 내고 이 나라의 도로나 공항에 자신의 이름을 붙이고, 명예 시민이 되고, 기사나 공작 부인, 공작의 칭호를 받을 수 있다. 그는 2015년 이른 봄 이 캠페인을 시작하고자 한다. 사람들은 20달러를 내면 자녀에게 명예 공주 타이틀을 사줄 수 있으며 액자에 넣어서 보관할 수 있는 증명서도 받을 수 있다. “그보다 더 높은 차원인 궁정의 직함도 얻을 수 있다”고 히튼은 말했다. “궁정 광대나 감옥 관리자는 수요가 높은 직함에 속한다.” 이런 직함을 얻으려면 200달러 정도 든다.

“심각한 목표를 갖고 심각한 방식으로 한 국가를 개발한다고 해서 그 과정에서 재미를 느끼지 말라는 법은 없다”고 히튼은 말했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연예 부문의 수익은 자녀의 교육을 위해 쓰겠지만 캠페인을 통해 모금하는 돈은 전부 북수단 왕국의 연구 프로젝트 자금으로 쓰일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 히튼의 삶은 평상시나 다름없이 흘러가고 있다. 그는 에밀리와 저스틴(12), 칼레브(10), 세 자녀가 언젠가 한 나라를 운영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과학 과목에 집중할 수 있게 노력을 기울인다. 히튼은 “자녀를 호화롭게 키우는 부유한 남자”라고 자신을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영화가 개발 초기 단계에 있는 현재 그런 비난은 터무니없다고 반박한다.

“사실 이집트와 비르 타윌까지 가서 그곳에 깃발을 꽂고 오는 데 약 3000달러가 들었다”고 히튼은 말했다. “항공료와 랜드 크루저 렌트 비용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 3000달러로 얻을 수 있는 이득(우리가 그 나라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하면 투자에 비해 굉장한 수익을 올리는 셈이다.”

글= LUCY WESTCOTT
번역= 정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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