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대생은 책도 안읽고 사치스럽다"는 건 막연한 통념일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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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통념을 깨는 일은 계란으로 바위를 깨려는 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우리는 종종 체험한다. 그래서 중·고등학생들의 머리·제복을 자율화하는데 36년이상이 걸렸고 남녀공학문제는 여러 가지 이유로 아직 미루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금년 여름 뜻밖에도 내가 종래에 가졌던 통념에서 해방되는 몇가지 놀라운 경험을 했다.
7월중순 미국 인디애나주 퍼듀대학 캠퍼스에는 연합장로교 여성대회 대표 만천5백여명이 모였는데 그중 5분의1 가량은 남성들이었다.
그들은 부인을 따라 함께와서 모든 순서에 빠짐없이 참석하고 있었고 개중에는 부인이 등록했는데 급한 사정으로 올 수 없게 되어 대신왔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여성들이 주관하는 여성회의에 왔다는 겸연쩍은 생각이나 콤플랙스가 전혀 없고 모든 프로그램에서부터 식사시간에 이르기까지 자연스렵고 진지한 모습으로 참여하는 것을 보고 충격과 아울러 흐뭇함을 금할 수 없었다.
또 한가지 파격적인 것은 이 모임은 엄연히 개신교의 모임이었으나 매일 있었던 노래부르기 시간에는 예배학을 가르치는 수녀교수가 기타를 메고 나와 그가 작곡한 많은 노래를 함께 부를 수 있도록 가르쳐 주었다. 이 시간이야말로 5천5백여명이 한마음으로 호응하면서 그분의 명쾌한 유머와 참신한 예술성에 도취되었다.
그밖에도 단상에서 강연과 설교등 주요 프로그램을 맡은 사람들은 초교파적 배경이었고 여러 주제로 나뉜 패널과 워크숍에는 50여명의 여성들이 여러나라에서 초빙되어 문제를 다루고 의견을 교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어 미국의 사회와 교회의 발전은 이러한 폭넓은 노력속에서 이뤄질수 밖에 없다는 것을 절감했다.
얘기가 나온김에 또 한가지 언급할 것이 있다. 이번에 초대된 여성중 중공에서온 여학생 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작년에 도미하여 컴퓨터학을 전공하는 유학생인데 영어도 잘 하는 편으로 많은 사람의 관심을 끌었다. 그는 아직 20대초반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으나 30세가 넘었다고 하면서 소위 문화혁명 시기에 집안이 서리를 맞아 공부할 기회를 놓쳤다는 것이다. 그는 사람들에게 중공얘기를 할때마다 모택동세력을 이어받은 강청등 4인조를 가리켜 「더 배드 가이즈」(악당)라고 말해서 폭소를 터뜨리게 하곤 했다.
공산체제하에서 자란 그 여학생이 자본주의 나라인 미국에 와서 공부하면서 먼 과거도 아닌 바로 몇년전의 중공의 내막을 그러한 노골적인 표현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놀라움울 금할 수 없었다.
이러한 몇가지 사실을 듣고 체험하면서 우리 사회를 다시한번 둘러 보게 된다.
오랜 세월을 지나면서 누적된 편견이나 그릇된 교육에 젖은 사고방식을 불식한다는 것은 분명히 어려운 일이고 많은 시간과 인내를 요하는 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인간의 노력과 외적 조건의 변화에 따라 편견과 통념을 극복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목격하고 무한한 용기를 얻게되었다.
우리 사회도 변화하고 있고 인간의식에도 느리나마 상당한 변화가 일고 있는 것같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은 우리 젊은이들 특히 젊은 여성들의 자아의식이 높아졌고 많은 책도 읽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때 감격을 금하지 못한다. 여대생들은 사치하고 잡담이나 하면서 책을 읽지 않는다는 통념은 바뀌어야 할때가 온 것같다.
우리 대학에서 현재 운영하는 교과과정 중에는 주입식 강의만이 아니라 학생들이 읽은 책과 관찰한 바를 토의하는 시간이 마련되어 있는데, 불과 5년미만에 학생들의 의사 발표력과 적극적인 참여도의 눈부신 변화는 우리 모두극 놀라게 하고 있다.
이러한 「바람직한 변화」가 있기에 교육을 맡은 사람들은 어려움과 쓰라림을 겪으면서도 참된 보람과 기쁨을 맛보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스스로 위로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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