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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종교인 과세는 비정상의 정상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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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정하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김정하
정치국제부문 기자

46년간 끌어온 종교인 과세 논의가 올해도 무산될 위기에 놓여 있다. 국회 기획재정위 소속 새누리당 의원들은 지난 24일 국회 귀빈식당에서 종교계 대표들과 간담회를 열었다. 내년부터 시행될 예정인 종교인 과세 방안에 대해 이해를 구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일부 개신교 측 인사들이 “종교 탄압”이라며 반발해 분위기가 썰렁했다고 한다.

 지난해 정부는 소득세법 시행령을 고쳐 2015년부터 종교인 소득을 ‘사례금’으로 분류, 세금을 매기겠다고 발표했다. 종교계는 “종교단체에 대한 세무 사찰이 될 수 있다”고 항의했다. 그러자 정부는 납부방식을 원천징수 대신 자진신고·납부로 전환하고, 근로장려세제(EITC) 도입 등의 혜택을 추가한 수정안을 마련했다. 원안보다 훨씬 완화된 내용이어서 “세수 증대보다는 종교인 과세라는 상징적 의미만 남았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였다. 그런데 이마저 종교계 반발에 부닥쳐 국회 통과가 불투명한 실정이다. 반발하는 쪽은 정확히 말해 개신교 보수교단이다. 천주교계와 불교계는 과세 방침을 수용하고 있다. 개신교에서도 진보교단은 납세에 긍정적이다.

 개신교 보수교단의 주장은 한마디로 “종교의 영역은 경제 영역과 다르니 특수성을 인정해 달라”는 것이다. 목회자에게 소득세를 부과하는 건 성직에 대한 모독이란 인식도 깔려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을 운영하는 기본 룰은 헌법이다. 종교의 특수성이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납세의 의무를 진다”는 헌법 규정보다 상위 가치일 순 없다. 현행 세법 어디를 뒤져봐도 종교인의 소득은 비과세대상이란 규정이 없다. 그동안 관행적으로 세금을 매기지 않았을 뿐이다. 과거 권위주의 시대에 정부가 사회 불만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종교계에 던진 유화책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종교인에 대한 과세는 새로운 규칙을 도입하는 게 아니라 그동안의 ‘비정상’을 정상화시키는 과정으로 이해해야 한다.

 종교인 과세는 글로벌 스탠더드다. 미국의 성직자는 연방소득세를 내고 있고, 영국에선 1년에 8500파운드(약 1472만원) 이상의 보수를 받는 목사는 현금뿐 아니라 현물에 대해서도 세금을 납부한다.

 최근 리얼미터 여론조사에선 종교인 과세에 71.3%가 찬성했다. 반대는 13.5%에 불과했다. 여론이 이렇게 압도적인데도 새누리당은 대형교회들의 반발을 우려해 종교인 과세법안 처리를 주저하고 있다. 새누리당이 공무원연금 개혁 논의에선 노조가 개입하면 안 된다고 하더니 종교인 과세에선 당사자들의 의사를 그토록 존중하는 것도 모순이다. 개신교 보수교단도 납세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한다. 예수님도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바치라”고 하지 않았던가.

김정하 정치국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