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심 못잡는 美 북핵해법

중앙일보

입력

미국이 '북한 핵을 인정하느냐'는 문제를 놓고 혼선과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언론이 "미 정부가 북한 핵을 사실상 인정한다"고 보도하면 백악관과 국무부가 이를 공식 부인하는 양상이 되풀이되고 있는 것이다.

리처드 바우처 국무부 대변인이 5일 "미국은 북한 핵을 인정하는 정책을 채택하지 않았다"고 한 것은 뉴욕 타임스가 이날 "미 정부가 사실상 북한 핵을 용인했으며 핵 물질 수출을 막는 게 가장 큰 정책목표"라고 한 보도를 부인한 것이다. 지난 3월엔 워싱턴 포스트가 "미국은 북한 핵 보유를 마지못해 인정하기로 했다"고 보도했으나 국무부는 이를 부인했었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미국의 대북 정책이 모호하고, 내부 사정도 맞물려 작용하기 때문이다.

우선 백악관과 국무부는 "북한은 이라크와 다르며 북핵 문제는 외교적으로 해결한다"고 줄곧 강조해 왔다. 하지만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지난 3일에 이어 5일에도 테러 관련 국가에 대한 '선제 공격론'을 언급했다. 때문에 미국이 북핵 문제를 끝까지 외교적으로 해결하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군사력을 동원할 수 있다는 것인지에 대해 해석이 엇갈리고 있다.

또 부시 행정부 내의 강경파는 북한에 대한 전면 경제봉쇄를 요구하며 베이징(北京) 3자회담 결과에 대해 부정적 평가를 내리고 있다. 그러나 온건파는 '베이징 회담은 성과가 있었다'는 입장이다. 그러면서도 '추가 회담을 할지는 검토해봐야 안다'며 시간을 끌고 있다.

겉으로 드러나는 부시 행정부의 대북 정책이 과거와 다르다는 점도 문제다. 1994년 빌 클린턴 정부 때부터 미국은 암묵적으로 "북한이 핵 재처리를 하면 공격한다"는 입장이었다. 소위 '레드라인(한계선)'이다. 하지만 베이징 회담에서 북한이 핵무기 보유와 사용후 핵연료봉의 재처리를 시인했는데도 미국은 이를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오히려 북핵 문제 해결의 책임을 한국과 중국.일본 등 주변국가들에 지우고 역할을 요구하고 있다. 이런 태도는 '북한 핵을 절대로 인정할 수 없다'는 공식 입장과는 거리가 있는 것으로 비친다.

따라서 이런 상황에서는 뉴욕 타임스나 워싱턴 포스트처럼 미국의 정책이 '북핵 불인정'에서 '북핵 수출금지'로 바뀌었다는 해석도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 북한이 핵물질을 주변 테러국가들에 수출하는 것만큼은 미국이 절대로 용납하지 않으리라는 점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결국 북한 핵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현실론과 이를 공개적으로 인정할 수는 없다는 공식 입장 간의 차이가 혼선 양상으로 나타나는 것 같다.
워싱턴=김종혁 특파원kimch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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