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옥같은 시와 시조에 나라사랑담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내고향 남쪽바다/그 파란 물 눈에 보이네/꿈엔들 잊으리오/그잔잔한 고향바다」
우리에게 잊혀지지 않는『가고파』를 남긴 다산은 겨레의 혼이 담긴 민족시인이었다.
3·l운동직후 일본에서 돌아와 그의 고향 마산 다비산에 올라 비감 속에 쓴 시 『옛동산에 올라』 는 만세운동으로 훌륭한 선배들이 감옥에 갇히고 혹은 망명을 떠난 슬픔을「그 큰 소나무/베어지고 없더라」 로 표현하면서 그러나「그흙에 새솔나서/키를 재려하는구나」 라는 귀절에서 그래도 희망을 잃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인 작품이었다.
연위전문과에 다니다가 일본으로 건너가 조도전대학 문과에서 수업한후 고국에 돌아온 다산은 『봄처녀』 『옛동산에 올라』등 고유한 전통의 시형식인 시조의 현대화에 힘쓰면서 이병기와 함께 시조운동의 쌍벽을 이루었다. 그는 현대시조시인으로 현대 시문학사에 기록될 많은 작품을 남겼다. 그의 시와 시조는 2천편을넘는다.
다산은 시조시인인 동시에 현대의 문장가로 손꼽혔다. 『무상』 『피어린 육백리』등 수필집과 전국각처의 의사·열사들의 비문·기행문·사화·부기등에서 그는 막히지 않는 필력을 보여주었다.
교육자의 집안에서 태어난 다산은 교육과 시작외에도 조선일보출판국주간등도 지내면서 활발한 사회운동을 한 그는 38년 일제말기의 암흑기가 시작되자 붓을 꺾었다.
그후 부산등지로 실의의 유랑을 하던 그는 42년 전남광양백운산에 들어가 친구가 경영하는 광산에 머무르다가 조선어학회사건에 관련되어 일경에 붙잡혀 함흥·광양에서 옥살이를했다.
8·15를 맞으며 그가『너라고 불러보는 조국아』라는 작품을 쓴 것은 그의 일제에 대한 깊은 저항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해방이후 다산은 활발한 사회활동을 하면서 호남신문사장·민족문화협회장·시조작가협회장·독립운동사편찬의원장·한국산악협회장·예술원총신의원·국정자문위원등을 역임했다.
『다산시조집』 『민족의 맥박』 『이충무공일대기』 『난중일기』등 40여권의 저서를 남기며 한국문학에 기여한 공로로 그는 대한민국예술원장상, 한글공로상, 5·16민족상등 많은상동을 수상했다. <임재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