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방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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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공산권의 움직임은 늘 비밀의 장막에 싸여 있다. 웬만큼 정신을 차리고 들여다보지 않으면 그들의 움직임을 낌새조차 느끼지 못한다.
등소평과 호요방의 평양방문도 그렇다. 중공당 총서기 호요방이 요즘 김일성과의 만찬석상에서 그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면 감쪽같이 모르고 지날뻔 했다.
중공의 최고지도자 등소평이 호요방과 함께 지난 4월 김일성의 70회 생일에 평양을 몰래 다녀갔다. 벌써 다섯달이나 전이다.
중공 수뇌의 평양방문이 비밀로 숨겨진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중공의 대내적 문제가 있었다. 두 거두가 북경을 비운 사이 반대파의 책동이 있을 수 있다. 12전대회에서 문혁파의 잔재세력이 철저히 제거된 것으로 봐도 당시 제거대상의 반발은 얼마든지 예상된다.
대외적 이유도 있다. 우선 김일성의 생일축하를 공식화함으로써 김일성 개인숭배체제나 김정일 세습후계를 용인하는 듯한 인상을 보일 수는 없었다.
명분과 당위에 어긋나는 북괴공산 세습왕조를 승인하고 두호한다는 것은 결코 중공에 이일이 될수 없다.
하지만 중공은 소련과 북괴관계를 염두에 두지 않을 수도 없었다. 그러나 지금 그 비밀이 공개된 것은 의미가 있다.
중공과 북괴의 극적 화해, 밀착을 공개하는 사건이다. 이것이 저들의 비밀방문의 내용일지도 모른다.
북한의 비밀 방문은 다른 전례가 있었다. 50년대말 북한에서 연안파와 소련파의 ??청이 이루어졌을 때, 소련에선 「미코얀」외상이, 중공에선 팽덕회가 각각 구명운동차 비밀리에 평양에 왔었다.
비밀방문이 공산권의 전유물만은 아니다.
71년 당시 「닉슨」미국대통령 안보담당 특별보좌관이던 「키신저」가 극비리에 북경을 방문한 적도 있다. 미·중공 화해를 이룩한 역사적 외교활동이다.
파키스탄 방문중 라발핀디에서 휴양차 산장 후양지로 떠났다고 발표된 후 아무도 모르게 잠적했던 것이다.
「키신저」의 중공 방문은 5일만에 「닉슨」에 의해 공개됐고 007을 능가하는 그의 외교행각에 세계가 깜짝 놀랐었다.
72년4월에도 「키신저」는 비밀리에 소련을 방문, 「브레즈네프」와 만났다. 월남문제를 마무리하는 외교여행이었다.
비밀방문의 내용이나 결과가 시원히 공개된 일은 없다.
비밀방문은 음산한 느낌이 없지 않지만 목적이나 성과가 꼭 부정적인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세상엔 공개 않고 은밀하게 추진할 일도 있다.
하지만 중공 수뇌의 평양 비밀방문은 어딘지 음산한 여운이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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