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방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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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프랑스에선 지금 별 희한한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다. 책이름은 『자살, 그 실행방법』(Suicide mode d'emploi).
저자는 기자출신의 클로드·기용과 이브·로·보녜크. 5월부터 꾸준히 베스트셀러 6∼10위를 기록하고 있다.
3백페이지밖에 안 되는 이 책이 프랑스사회를 벌집 쑤셔놓은 듯 만든 것은 책이름 그대로 자살방법을 가르쳐주기 때문. 자살에 이르는 독극물의 종류와 구입방법, 몇종류의 약을 적어 치사량의 칵테일을 만드는 방법, 자살하기에 좋은 장소 등이 열거돼 있다.
실제로 지난 7월엔 르와르강 계곡에서 한 백화점 점원이 자살한 시체로 발견됐는데 그 옆에는 바로 이 책이 놓여 있었다. 그 후에도 이 책의 지침에 따른 자살이 몇건 더 발생하자 이 책의 판매금지를 주장하는 사회여론이 거세게 일어났다. 저자야말로 범죄자라는 비난도 있다.
그러나 출판업자 알랭·모로는 반격한다. 『이 책은 생을 위한 책이다. 자살할 권리는 일할 권리처럼 양도할 수 없는 권리다. 건전한 정신으로 진정 죽기로 결정한 사람들이 왜 고통없이 죽을 수 없단 말인가.』
문제는 프랑스법으론 이 책의 판금을 결정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자살이 위법이 아닐 뿐만 아니라 출판의 자유가 거의 완벽하게 보장돼 있기 때문이다. 오직 이 책이 자살방조에 해당한다면 형법을 개정하겠다는 것이 프랑스 법무성의 견해.
『자살, 그 실행방법』과 같은 책이 잘 팔리는 사회분위기도 한번 생각해 봄직하다. 그 원인을 실업에서 찾으려는 사람들도 많다. 실제로 프랑스는 물론 이 책의 번역판을 준비중인 영·미가 모두 전후최고의 실업률을 나타내고 있다.
프랑스도 l978년까지는 자살자가 9천1백명선이었으나 80년에 1만3백41명, 81년에 1만5백51명으로 늘어났다. 경제위기와 함께 자살자가 늘어난 것이다.
그러나 고용위기가 상존하는 영국과 이탈리아의 자살률이 프랑스보다 낮은 것을 들어 실업만으로는 자살증가를 설명할 수 없다는 주장도 있다. 75∼77년의 통계를 봐도 인구 10만명당 자살률은 프랑스가 남자 31·5명, 여자 11·6명인데 비해 영국은 12·6명, 7·4명이었다.
프랑스 사회학자 E·뒤르켕은 자살의 개인적 형태로 무관심, 열정과 의지, 흥분과 분노 등 세가지 기본유형과 행동과 공상의 혼합, 격앙된 흥분, 도덕적 용기가 포함된 우울증 등 세가지 혼합류형으로 분류했다. 1790년대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출간되자 유럽젊은이들 사이에 「베르테르 증상」이 휩쓴 것은 정열과 의지에 의한 자살로 꼽을 수 있다.
뒤르켕은 이같은 개인적 자살동기가 집단과 개인의 충돌, 즉 개인을 지배하려는 집합적 힘과 이를 배척하려는 개인적 힘의 마찰에서 빚어진다고 설명한다. 이렇게 보면 개인과 사회의 상호조화가 생명의 외경심을 높이는 건강한 사회를 만든다는 결론으로 돌아온다. 역시 진리는 평범한 것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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