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그리 바빠 엘리베이터도 밀어젖히며 타야하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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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오랜만에 처음으로 옥잠화향기를 음미하며 조그마한 정원속 자연의 질서를 접해본다.
유난히도 무덥고 메말랐던 여름, 온갖 일에 몰려 하루같이 바쁜 나날을 보내야만 했던 나에게 기대하지 않았던 여유와 평안이 찾아온다.
가을을 가장 먼저 타는 석류잎은 벌써 낙하준비로 황금빛 물이 들어 있다. 지금부터 벌어질 석류의 그 장관은 생각만 해도 흐뭇함을 준다.
밤새도록 울던 둘밑 귀뚜라미가 조용하다고 느끼는 순간, 다시 맑은 소리를 내며 울어댄다.
바쁜 일상의 핑계로 얼마나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자연의 정경인가.
또 여기에서 얻는 평안함과 안락함의 비밀은 무엇인가.
전화벨소리, 그리고 초인종소리.
바쁜 일상이 또 나를 불러 도시의 번잡함으로 끌려 나온다.
택시정류장.
주말의 오후에는 더욱 붐비고 바쁜 곳이다. 줄을 서서 택시 차례 오기만을 기다리고있는 사람들. 길가까지 나와 행선지를 외치며 합승하려는 사람.
『여보, 내리시오.』
택시정류장 바로 직전에서 빈택시를 그냥 잡아타고 달리는 새치기 승객에게 사람들이 고함을 친다. 택시가 멈출듯이 멈칫거리다가 그냥 쏜살같이 달려나가 버린다.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의 입에서 욕설이 터져 나온다.
겨우 얻어 탄 합승으로 시내를 달린다 아차 싶게 택시가 급정거를 하고 얼굴이 백지장 같이 된 기사가 거리에 대고 욕설을 퍼붓는다. 횡단보도도 아닌 곳을 건너려는 행인때문에 자칫 사고가 날뻔 했기 때문이다.
거리의 무질서는 도시무질서의 대표적이다.
줄서기를 강조하고 교통주간을 갖는 것도 잠깐이다. 팻말을 들고 머리띠를 두르는 것으로 강조주간 행사를 끝내는 것은 무의미하다.
준법정신이 생활화된 어느 미국인 교수가 그가 살고 있는 아파트의 엘리베이터 사용자에 대해 불만을 털어 놓은 적이 있다.
『한국인은 무엇이 그리 바쁜지 밀어젖혀가며 엘리베이터를 타야하는가』라는 것이었다.
뿐만아니라 엘리베이터 앞에서 줄을 서는 모습을 볼 수 없다고 있다. 한마디의 인사말도 없이 앞사람을 젖히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것은 보통이더라는 이야기였다.
그렇게 쫓기고, 그렇게 초조해서 남까지 불쾌하고 기분상하게 할 필요가 있느냐고 그 교수는 덧붙였다.
무질서는 이렇게 사람들을 불쾌하고 욕설을 하게 하고 불편하게 만든다.
교통의 무질서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는 너무나 많은 무질서가 있다. 사람이 모여사는 곳에 무질서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우린 무질서속의 사회생활을 하고있다.
앞서가는 사람, 잘되는 사람을 우리 모두의 「시기에 찬 자아」 는 용납하려 하지 않는다.헐뜯고 끌어내리며 칭찬에 인색하다. 스승과 제자, 부모와 자식, 고용주와 고용인, 주인과 객이 일방적인 평가만을 자행할때 무질서는 더욱 무질서를 낳고 만다.
서로가 입장을 바꾸어 명가하고 건의를 받아들인다면 질서는 회복될 수 있을 것이다.
몇백번의 강조주간보다 서로가 양보하고 협동하는 정신을 조금식만 기른다면 질서는 잡혀가리라 본다.
내집 뜰의 자연에서 느낀 평안함과 여유있음은 자연의 질서정연한 모습에서 얻을 수 있었던 것이구나 라는 깨달음을 번잡한 도시 한가운데서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최은경

<약력>▲37년 서울 출생▲이대와 동대학원졸업▲미하와이대·루스벨트대에서MA▲현 덕성여대영문과 과장·한국영어교육학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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