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도청 '핵폭풍'] "반드시 밝혀야 할 비리 테이프에 있는 것 같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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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무현 대통령이 8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국정원 불법 도청과 관련해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청와대사진기자단

노무현 대통령이 8일 불법 도청 테이프 내용의 공개 범위 문제를 국회의 특별법 도입으로 해결하자고 제안했다. 야당의 특검 요구엔 비판적이었다. 지난주 휴가 동안 관저에서 정리한 구상을 업무에 복귀하는 날 아침에 발표한 것이다.

노 대통령은 우선 도청 사건의 전개 상황을 대연정 제안 등 정계 새판 짜기를 위해 활용하려는 게 아니냐는 시각에 대해 "아무런 정치적 음모도 없다"며 선을 그었다. "내가 정치의 고비를 넘길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진실대로 하는 것이고 그 외엔 나 자신을 던지는 것이었다"며 "그 외에 내가 썼던 술수가 있으면 얘기해 보라"고 반문한 대목에선 얼굴이 벌게졌다.

그는 "지금 무슨 사실을 내가 덮어버린다면 나를 위해 일한 참모들이 다음 정권에서 불려다녀야 하지 않겠느냐"며 "이 악순환을 어디선가 끊어야 하며 김승규 국정원장이 다시는 검찰에 불려다니는 일이 없어야 된다"고 했다. "내가 덮으라고 했다가 발각되면 누가 나를 지켜줄 것이냐"라며 '사심 없음'을 거듭 강조하고 나섰다.

노 대통령은 우선 국가기관의 불법 도청 부분에 대해서는 철저한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 조치를 다짐했다. 그는 "도청은 정.경.언 유착보다 훨씬 더 심각하고 본질적인 문제이며 인권 침해"라며 "그 인권 침해가 국가 권력에 의해 국민에 대해 가해지는 범죄 행위이기 때문에 더 심각하다"고 강조했다. 또 "정경유착은 5공 청문회 때부터 진상이 상당히 밝혀져와 다 밝혀진 부분 중의 하나지만 도청은 한 번도 그 모습을 드러낸 일이 없다"고 지적했다. "중앙정보부 때부터의 정보조직 불법 행위가 한번도 파헤쳐진 적이 없다"고 했다.

현 정부에서의 도청 여부에 대해 노 대통령은 "(국정원에서) 자체 조사를 하고 있다"며 "검찰 조사도 병행하고 있으니 그 결과를 보고 참여정부에서도 도청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확인하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의 고심이 가장 큰 대목은 도청 테이프 내용 공개 문제였다. 그는 "이건 좀 복잡하다"며 "수사는 수사고 공개는 공개로 가도록 정리해 달라"는 말을 10여 차례나 강조했다. "대통령한테 공개냐 비공개냐라고 물으면 답할 수가 없다"고도 했다. 불법 도청의 내용 공개가 불법이기 때문에 "법을 뛰어넘을 수 없다"는 설명이었다. "일반 명예훼손은 공공의 이익이라는 문제가 있지만 이번 사건은 도청 자체가 불법이라 법의 근거도 없이 함부로 위법성 조각 사유라는 해석을 만들어 내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도 그는 "국민 70%가 지금 공개하라고 아우성"이라고 대비시켰다. 여론의 흐름을 환기시키며 그는 "(테이프 안에는) 사회정의를 위해 반드시 밝혀야 할 구조적 비리도 들어있는 것 같다"고 했다. 한 핵심 참모는 이와 관련, "이미 불법 도청 테이프들이 여러 차례 유통돼 판도라의 상자가 열려 있다는 게 청와대의 인식"이라며 "그럴 바엔 법에 의한 일정 수준의 내용 공개는 불가피하지 않느냐는 현실적 판단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 해법으로 국회에서 특별법을 만들어 달라는 게 이날 노 대통령의 결론이었다. 공개.비공개 여부와 자료 보존.폐기 등에 관해 국회가 법으로 정리해 달라는 얘기였다.

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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