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자에 대한 차별은 정신적후진성 드러내는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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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얼마전 법관임용에서 지체장애자가 탈락된 사건에 대해 나 또한 장애자로 느낌이 많았다.
물론 해결에 가까운 내용의 발표가 있어 마무리 단계에 있지만 우리를 섭섭케 한것이 사법부라고 생각할때 한번쯤 짚고 가야겠다는 생각이다.
구태여 인간의 기본권을 강조한 헌법조문을 들고싶지는 않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장애자차별에 대해 거론하고 울분을 토하고 싶지도 않다.
다만 발전하는 국가에서 아직 정신적인 후진성을 이토록 드러낼 필요가 있는가부터 따져 묻고 싶다.
장애자란 스스로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신체적인 불구가 된 사람이다.
그 장애 때문에 인간적인 차별이나 사회적인 차별을 받는다는 것은 억울한 일이다.
선천적인 장애자도 있지만 앞으로 사회가 산업화로 치달을수록 불의로 장애자가 되는 사람이 늘어날 것은 당연하다.
공해·질병·약물중독·재해·교통사고등 누가 언제 어떻게 장애를 입을지 모르는 것이다.
때문에 장애자 문제는 곧 나의 문제이며 사회전체의 문제가 된다.
나 역시 50세까지 건강하게 살다가 어느날 갑자기 전신마비라는 장애를 얻은 사람이다.
병과 투쟁하고, 병을 극복하는 사이 나는 인간적으로도 많이 켰고 사회와 인간을 보는 안목도 자랐다고 자부한다.
장애자를 죽어 있는 기능의 결함만으로 마이너스 요인을 삼는다는것은 부당하다.
장애자의 살아있는 기능은 마이너스 요인을 극복하는 의지만큼 정상인보다 발달해 있을 수 있다.
선진국에서는 장애자의 살아 있는 기능개발에 도움이 되도록 적극적인 지원을 하고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지난 날의 장애자들은 편견의 그늘아래서 사회적 제도의 미비로 인해 생활 어느 구석에서나 고난을 당하지 않을 때가 없었다.
그 고난은 연쇄를 일으켜 장애자들의 사회참여를 제한했고 억압했고 차단하려 했다.
어쩌면 장애자들은 가정·학교·사회에서 소외되고 있는 어떤 편견에 사로잡혀 살아왔다고해도 지나친 표현은 아닐 것이다.
발전된 사회란 이 같은 장애자들도 평등을 누릴수 있는 세상을 말한다.
오늘의 장애자들은 인간관계에 있어서의 거리를 싫어한다.
장애자와 건강인이 유별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차별과 편견이 개재하는 인간관계는 소외와 비인간화의 원인이 된다고 생각한다.
제5공화국 출범과 급속한 경제성장에 발맞추어 사회개발면에 많은 신경을 쓰고, 또 사회일각에서도 복지사회에 대한 관심이 점점 높아져 가고 있는 이때 외형적 활동상의 편견만으로 능력개발 및 사회참여의 기회를 부여하지 않는다면 그 사회나 국가는 결과적으로 막대한 손실을 자초하게 된다는 자각이 있어야 한다.
오늘의 시대는 두뇌개발경쟁의 시대다. 반드시 신체적 완벽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고 장애자들이 자선과 동정을 바라는 것은 아니다.
동등한 권리로, 등등한 경쟁으로 동등한 사회참여의 기회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한 인간으로「개선」을 희망함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 아니겠는가.
만인 평등의 법을 펴야하는 사법부에 장애자 차별이란 발상이 아직 남아있음은 유감된 일이며, 앞으로 다시 이런 일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글을 쓰는 것이다.
이윤진

<약력>▲27년황해도해주출생▲이대졸업▲53∼78년까지 이대재직 ▲63년 이대 체육대학장▲정립회관 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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