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깊이 읽기] 부패 권력의 천적! Mr.슈피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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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권력과 언론 / 원제 Schreiben, Was ist
루돌프 아우크슈타인 지음, 안병억 옮김, 열대림, 448쪽, 2만5000원

세계 저명 언론인들은 국가 권력과 맞서 언론 자유를 신장시킨 20세기 최대의 사건으로 보통 두 개를 꼽는다. 하나는 1962년 독일의 슈피겔 사건이고, 다른 하나는 10년 뒤인 1972년 미국 워싱턴 포스트의 워터게이트 사건. 하지만 미국 현직 대통령 닉슨을 하야시킨 워터게이트 사건과 달리 언론 자유의 또 다른 이정표인 슈피겔 사건은 비교적 생소하다.

사건은 시사잡지인 슈피겔이 국방부 스캔들을 잇따라 폭로하자 검찰이 사무실을 급습해 발행인 루돌프 아우크슈타인(사진)과 기자들을 103일간 투옥하면서 시작된다. 아데나워 서독 수상은 광고주에게 광고를 주지 말라는 압력까지 행사한다. 그러자 시민과 독자들이 언론 탄압을 비판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였고, 아데나워 수상과 스트라우스 국방장관의 동반 사퇴로 한 시대가 마감된다.

서독 민주주의는 슈피겔 사건과 함께 시작했다는 평가받을 정도로 이 사건의 의미와 파장은 컸다. 이는 걸출한 발행인.언론경영인이자 기자였던 아우크슈타인 때문에 가능했다. '언론자유의 영웅'이자 '슈피겔 신화의 주인공'의 의지로 슈피겔은 정치인과 기업 총수는 물론 교황까지 물고 늘어질 정도로 탐사 저널리즘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권력과 언론'은 아우쿠슈타인의 언론 인생 파노라마.

책에 나오는대로 슈피겔의 보도로 수많은 정치인들이 정계에서 사라졌고, 기업인들이 쇠고랑을 차기도 했다. 기민당과 사민당 수상 후보였던 로타 슈페트와 엥홀름 주지사까지 슈피겔 보도로 정계를 은퇴했다. 독일 최대 노조인 금속노조 위원장도 내부자 거래를 이용해 투자이익을 챙겼다는 보도로 물러났다. 아우크슈타인 앞에선 보도의 성역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도 인간인 지라 한때 '외도'를 했다. 그리고 막바로 뉘우치며 제자리에 돌아왔다는 점도 중요하다. 72년 자민당 후보로 전국구 국회위원이 된 것이다. 하지만 2개월만에 의원직을 사임하면서 "슈피겔로 돌아가는 것 외에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말과 함께 컴백을 했다.

그는 경영에도 신화를 남겼다. 74년 회사 주식의 절반을 전 직원에게 배분했다. 이 결정 뒤 그는 "(그게) 내 인생의 가장 큰 실수"였다는 농담을 즐겼지만, 그 덕에 지금도 슈피겔 기자는 최고의 대우와 취재 환경에서 일하고 있다.

2002년 삶을 마감할 때 까지 펜을 놓지 않았던 그의 말을 경청해보자. "정치가가 자신의 영달을 위해 권력을 추구한다고 해서 기자도 똑같이 그래선 안된다. 기자에게 최악의 적은 정치인과 호형호제하고 허물없이 지내는 것이다. 그렇다. 과연 기자는 정치인과 영원한 우정을 나눌 수 없다."(203쪽)

김택환 미디어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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