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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히로시마 원폭 투하 60주년] 생존 피폭자들 "일본 우경화 우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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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 60년 전 원자폭탄 투하 직후의 상태를 그대로 보관하고 있는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 내 ‘원폭 돔’ 앞에서 3일 모리타 다카시(82).아야코(81) 부부가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 기도를 올리고 있다. 헌병, 시청 직원으로 일하던 이들은 당시 피폭으로 심한 화상을 입고 오랜 후유증을 겪었다. 히로시마=김현기 특파원

미국의 원자폭탄이 일본 히로시마에 투하된 지 6일로 60년을 맞는다. 세계에서 최초로 핵폭탄을 경험한 도시 히로시마-. 60년이란 세월의 풍화 속에 이들이 얻은 교훈과 입은 상처는 과연 무엇일까. 일본은 '노 모어 히로시마 (No More Hiroshima.히로시마의 비극은 더 이상 안된다)'의 외침을 앞으로도 지켜나갈 수 있을 것인가.

3일 오전 8시15분. 일본 히로시마(廣島) 시내 평화기념공원에 평화를 염원하는 멜로디가 울려퍼졌다.

'오전 8시15분'은 1945년 8월 6일 미국의 B-29기가 히로시마 상공에 원자폭탄을 투하한 시간이다. 당시 미 폭격기 '에놀라 게이'에 탑승했던 시어도어 밴 커크(84)는 "섬광만이 보였다. 이제 전쟁은 끝났다고 생각했다"고 회고했다.

쓰보이 스나오(坪井直.80). 그는 60년 전 원폭 투하 직후의 흉칙한 몰골 그대로 보존돼 있는 '원폭 돔' 앞에서 눈시울을 붉힌 채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원폭 투하 당시 히로시마대 2학년이던 그는 피폭 중심지에서 1km 떨어진 곳에 있다가 섬광을 느낀 직후 몸이 10m가량 튕겨져 나갔다. 의식을 되찾았을 때는 온몸의 피부가 심한 화상으로 시커멓게 타 축 늘어져 있었다. 1주일 동안 "나쁜 미국 놈들"이라고 외치며 미친듯이 거리를 돌아다니다 간이치료소에서 의식을 잃고 말았다. 40일 만에 깨어났지만 1년 동안 일어나질 못했다. 방사선으로 척수가 파괴되고 빈혈이 심했기 때문이다. 이후 입퇴원을 반복한 끝에 극적으로 생명을 건졌다. 아직도 매일 5종류의 약을 먹고 있다. 그러나 더 아픈 것은 마음속 상처다. 그는 "딸이 다섯번이나 유산할 때는 가슴이 찢어졌다. 피폭자인 내 탓인 것 같아 정말 죽고 싶은 생각뿐이었다"고 말했다.

"처음 30년간은 미국의 '미'자만 들어도 욕이 나오고 복수심에 불탔다"고 했다. 그러나 70년대 중반 베트남에 갔을 때 베트남 시민단체 사람들로부터 "당신 나라에 원자폭탄이 떨어져 우리나라는 해방이 됐다"는 말을 듣고는 크게 깨달음을 얻었다. 그는 현재 전 세계를 돌면서 평화의 소중함을 알리는 시민운동을 하고 있다.

6일로 원폭 투하 60년을 맞는 히로시마. 당시 인구 32만 명 중 14만 명이 몰살됐던 비극의 땅이다. 6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히로시마는 인구 112만의 공업도시로 다시 태어났다. 외관상 원폭의 흔적을 찾기는 힘들다. 그러나 피폭의 상처는 아직도 많은 이들의 가슴속에 남아 있다.

히로시마 시내 중심가에서 차로 50분 거리의 아사키타(安佐北)구 구라카케(倉掛) 양호원.

"원폭이 터진 다음날 새벽부터 갑자기 남편의 몸에서 열이 나고 하혈을 하기 시작하더군요. 긴 투병생활이 시작됐지요." 양호원에서 간호 보조를 하는 마쓰오카 후사코(87)는 흐느끼면서 이같이 말했다.

그의 남편은 결핵에 걸려 폐의 3분의 1을 잘라냈다. 수면제로 의존하는 날이 이어졌다. 마쓰오카는 "남편은 환각상태에 빠져 '뱀이 있다' '날 죽여달라'며 외치곤 했다. 어쩔 수 없이 술에 수면제를 타 마시게 한 적도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그의 남편은 고통속에 살다가 87년 숨졌다.

2일 오후 히로시마 평화공원에서 만난 70대 여성은 자신의 경험담을 들려주다 말문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불바다 거리를 달려 집으로 돌아가려 하는데 불덩이가 된 사람을 발견했어요. 저와 사이가 좋았던 같은 반 친구였어요. 그는 '도와달라'고 외쳤지만 그러지 못했어요. 얼마나 무서웠던지…."

일본 내 피폭자들은 현재 26만6000명. 평균연령이 73세다.

이들의 한결같은 걱정은 지나온 60년이 아니라 '앞으로의 60년'이었다.

한국인 피폭자를 지원하는 시민단체에서 일하는 도요나가 게이자부로(豊永惠三郞)는 "피폭 세대들이 사라진 후 과연 일본이 평화를 지켜낼 수 있을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3일 평화 학습차 히로시마를 찾은 가가와(香川)현 부속 사카이데(坂出)중학교의 한 교사는 "매년 8월 실시하는 평화실습에 참석하는 학생이 갈수록 줄고 있다"고 밝혔다. 부인과 함께 피폭 당했던 모리타 다카시(森田隆.82)는 "일본은 원폭의 피해자이자 전쟁의 가해자였다는 사실도 정확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며 "최근 일본 사회의 우경화를 보면 60년 전의 과오를 되풀이하는 것 같아 솔직히 조마조마하다"고 말했다.

히로시마 평화공원 안에는 '부디 편히 잠드소서. 과오는 되풀이되지 않을 테니까요'라는 글귀가 적힌 희생자 위령비가 있다. 이 말이 영원히 지켜지는 것이 피폭자들의 마지막 희망이다.

김현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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