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분야에서건 「없어서는 안 되는 사람」이 되라던 말씀이 귀에 쟁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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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내가 서울중학교에 입학한 것은 1947년. 5년제 중학교에 입학해서 3학년때 병을 만났고 그 바람에 1년이 늦은 1953년에야 졸업을 했다. 재학중 학제개편으로 중·고교가 분리되서 서울고등학교로 됐다.
당시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고 김원규선생님.
「극성」이란 별명의 김교장 선생님을 30년도 더 지난 지금까지 잊지 못하고 그 극성스런 가르침이 내 인생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를 노상 느끼며 살다보니 어느덧 그 무렵의 선생님 나이에 이르렀다.
당시 서을고등학교는 김교장선생님의 유별난 교육방침에 따른 스파르타식교육으로 유명했다. 그것이 하나의 전통을 형성해가고 있었다.
김교장선생님은 용모·복장·일거수일투족의 모든 행동에 「지도자다운 방정」을 요구하셨다. 우리가 보기에는 시시콜콜한 것까지 어찌나 간섭이 심하던지 그때는 『너무한다』는 불평들도 많았다. 한 가지 예가 화장실에 갔다 나오기 전에 바지단추를 단정히 잠그는 것. 쉬는 시간이면 화장실 모퉁이에 지켜서 있다가 나온 뒤에 잠그거나 급한 김에 잠그면서 뛰어나오는 학생들을 영락없이 불러세웠다. 손바닥을 회초리로 치시며 『신사의 품행이 그게 뭐냐』고 꾸짖으시던 선생님.
겨울이면 추위에 손이 시려 주머니속에 손을 넣게 마련. 그러나 선생님은 『젊은이가 그만한 추위를 못이겨 손을 주머니에 넣고 떠는 것은 기백이 부족한 것』이라고 호령하셨다. 추울수록 어깨를 바로 펴고 두 주먹을 활달하게 밖에 흔들며 걷는 씩씩한 모습은 그대로 감투의 정신으로 통하는 것이라고 하셨다. 50이 된 지금도 나는 이 고등학교시절의 습관 덕분에 손을 주머니에 넣지 않는다. 무엇보다 평생을 두고 나를 깨우치는 것은 1주일에 한번 조회시간마다 입버롯처럼 하시던 맡씀. 『세상에는 그 자리에 있으나마나한 사람과 있어서는 안 되는 사람. 없어서는 안 되는 사람의 세 종류가 있다. 어느 분야에서건 「없어서는 안 되는 사람」이 되라』시던 그 가르침이다.
53년부터 성우로 방송과 인연을 맺어 오늘날까지 30년이 다 되도록 나는 늘 이 가르침을 지키며 살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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