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9기 KT배 왕위전' "바둑은 조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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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제39기 KT배 왕위전'
재2보(24~42)
○ . 왕 위 이창호 9단 ● . 도전자 옥득진 2단

일단 판을 잘 짜야 한다. 그런데 판을 잘 짠다는 것은 무엇일까. 집도 풍부하고 두터움도 넘쳐흐르면 더 바랄 게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두 가지를 동시에 갖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데 바둑의 고통이 있다.

기성 우칭위안(吳淸源)은 '바둑은 조화(調和)'라는 한마디로 이 같은 바둑의 숙명성을 표현했다. 그러나 밸런스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다. 실리와 두터움의 무게를 저울로 달아볼 수도 없다.

옥득진 2단의 27과 29를 보며 검토실의 프로들이 "정말 튼튼하네. 그런데 너무 단단한 것 아냐"라고 묻는다. 이 말 속엔 너무 느린 것 아니냐는 걱정과 집 부족을 염려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30부터 34까지 꽉꽉 틀어막은 이창호 9단의 수순도 사실은 비슷한 기운을 풍긴다. 스피드를 중시하는 사람이라면 '참고도 1' 백1로 벌려 큰 곳부터 차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9단은 흑 2로 가르고 나오면 상변도 볼품없는 데다 백 두 점이 외로워져 피곤한 바둑이 된다고 느낀다.

반상 최대의 곳이라 할 수 있는 35는 그래서 자연스럽게 흑의 차지가 되었다. 이창호는 36으로 푹 들어왔는데 이 수는 기리(棋理)에 따른 수일 뿐 기풍과는 상관없다.

36으로 A에 벌리는 것은 너무 좁다. 36은 B를 보고 있어 37은 절대의 한 수. 이때 자연스럽게 38로 추격하는 것이 세력을 공격에 활용하라는 기리에 부합한다. 41은 '참고도 2'흑 1로 끊어버릴 수 없을까. 매우 유혹적인 수단이어서 옥 2단도 망설였다. 그러나 이창호 9단은 국후 '참고도 2'를 보여주며 백이 강한데 중앙에서 흑의 수습이 괴롭지 않겠냐고 말했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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