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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을 위한 마케팅 전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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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비 오는 날 빵집에선 바삭한 패스트리가 가장 많이 팔린다고 한다. 수영복도 화창하고 더운 날보다는 비 오는 날 더 많이 팔린다. 지난달 하순께 그 무더웠던 일주일 동안 아이스크림 판매량은 5월 판매량보다 많았다. 소비자들은 이렇게 날씨에 따라 변덕스럽게 소비품목을 바꾸고, 유통점에선 날씨에 따라 팔릴 만한 물건을 점포 앞에 내세운다.

소비를 부추기는 요인은 날씨만 있는 게 아니다. 사람들의 소비행위라는 것은, 말하자면 자신에게 필요하거나 없는 것을 사서 채우는 것이어서 시장사람들은 늘 소비자들의 '필요'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그 '필요'라는 것이 반드시 물질적인 부족에서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비 오는 날 바삭한 패스트리나 수영복을 사는 것은 밝고 쾌적함을 원하는 심리적 대용품을 마련하는 행위다. 소비는 이렇게 쾌적한 삶을 추구하는, 지극히 심리적인 측면에서도 이루어진다.

이런 점에서 시장의 마케팅 경향, 혹은 유행하는 소비패턴을 잘 들여다보면 사회 전체의 결핍 내지는 욕구가 무엇인지 알 수 있게 된다. 유기농 식품이나 건강 관련 상품들을 앞세운 '웰빙'은 지난해 시장의 주된 마케팅 경향이었다. 최근 다소 시들해지긴 했지만 이 마케팅은 결국 식품 안전성과 오염된 환경에 대해 소비자들이 느끼는 불신의 틈을 파고들어 크게 성공했다.

최근 유통가에서 눈에 띄는 마케팅 주제는 쉼(休)과 재미(Fun)다. 캔으로 만든 녹차 등 다양한 차(茶)제품들이 쏟아지는 것도 여유와 휴식을 원하는 소비자들의 심리를 파고든 것이라고 유통전문가들은 말한다. 최근 번지고 있는 요가 열풍도 마음 편히 쉬고 싶은 사람들의 욕구에 편승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쉼과 운동의 경계선에 있는 요가는 현대인들이 즐겨했던 격렬한 운동을 대체하고 있다. 이에 명품을 판다는 백화점들도 요가수련원을 앞다퉈 유치하고 있다.

이와는 정반대로 보이는 펀 마케팅도 크게 유행하고 있다. 왁자지껄, 시끌벅적, 알록달록함을 기본 컨셉트로 하는 이 마케팅은 한 번 크게 웃고 즐길 수 있는 원초적이고 오락적인 재미를 팔려고 하는 것이다. 해외 유명브랜드의 '짝퉁 상품'이 '패러디 상품'이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조명되고, 바지 허리춤을 팬티끈으로 만드는 등 아예 웃기려고 만드는 '펀 제품'이 인기다. 휴대전화 같은 첨단 제품 쪽에서도 튀는 디자인의 '퍼놀러지(펀+테크놀러지) 상품'이 쏟아져 나온다. 그런가 하면 유통점들은 사람들을 끌어모으기 위해 요란한 이벤트를 벌이고, 앉아서 놀 수 있는 공간을 따로 마련한다. 젊은이들이 주로 찾는 중저가 화장품 전문점들은 한쪽엔 화장품을 발라보면서 노는 장소를, 또 다른 쪽엔 음료수를 마시며 떠드는 장소를 만들어놓고 있다. 재미가 없는 곳에 소비자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런 상품과 마케팅 기법이 전에 없던 새로운 것은 아니다. 과거엔 별로 눈길을 끌지 못했을 뿐이다. 마케팅은 소비자들의 필요를 정확하게 읽어야 성공할 수 있다. 쉼과 오락적인 일회성 재미를 좇는 마케팅이 번성하는 것은 바로 지금 우리에게 결핍된 것이 무엇인지를 시사한다. 쥐도 새도 없는 방 안에서 나눈 대화가 그대로 녹음되고, 대통령은 무슨 제안을 할 때마다 정권을 걸고 나서 그를 뽑아준 국민을 무색하게 한다. 청년들은 일자리를 찾아 전전긍긍하고, 40대 직장인들도 실직을 걱정한다. 쉼과 펀 마케팅은 이처럼 '쉴 자리'와 '즐거움'을 찾기 힘든 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겨냥하고 있다.

그러나 바삭한 패스트리를 먹는다고 비 오는 날의 눅눅함이 쾌적함으로 바뀌지는 않는다. 같은 이유로 쉼과 재미를 사서 채워넣을 수는 없다. 지금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건 불신과 불안감.불쾌감 등을 줄일 수 있는 사회적 안전장치인 것 같다.

양선희 산업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