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모기지론 찾는 사람이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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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자식들에게 집 한 채라도 물려줘야 한다는 한국인 특유의 인식 때문인가'.

주택을 담보로 내놓고 금융회사에서 일정기간 연금처럼 돈을 빌려 쓰는 '역모기지론'의 이용자가 예상에 크게 못 미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일 한국은행이 내놓은 '역모기지론 취급 현황 및 활성화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신한.조흥은행과 농협.흥국생명 등이 지난해 5월 이후 1년여간 취급한 역모기지론의 판매 실적은 6월 말 현재 약정 체결건수 347건에 약정금액은 416억원에 불과했다. 금융기관별로는 ▶신한은행 211건(258억원) ▶조흥은행 121건(147억원) ▶농협 15건(11억원) 등이며 흥국생명은 아직 실적이 없다.

◆노후 대비로 좋지만=역모기지론의 대상은 노후 생활을 위해 충분한 자금을 마련하지 못한 노년층이다. 한국에선 65세 이상 가구의 주택 소유비율이 70%에 달하지만 노후를 보내는 데 필요한 현금은 넉넉하지 않은 게 현실이다.

이 때문에 80세까지 산다고 가정하면 65세쯤 되는 노인들은 여생 동안 집을 담보로 일정 기간 매달 연금처럼 받아쓰는 역모기지론만한 노후보장 수단이 없다. 예를 들면 65세 노인이 시가 3억원짜리 집을 15년간 역모기지론으로 대출받는다면 월 52만원가량을 받을 수 있다. 대출 한도는 현재 집값의 60%까지 허용해주고 있으므로 1억8000만원을 15년간 사용하는 것이다. 15년간 원금과 이자(고정금리 8% 적용할 경우)로 이 돈을 모두 사용한 뒤 사망하면 은행이 집을 처분해 원금과 이자를 회수한다. 나머지 40%는 자식 등 상속자에게 돌아간다. 대출금을 되갚고 담보를 해제하는 것도 가능하다.

◆걸림돌 풀어야 활성화=시가 3억원짜리 주택을 활용해도 월 연금수령액이 고작 52만원에 불과한 것부터 문제다. 이는 대출금리가 높기 때문인데 고정금리를 적용하면 8%, 변동금리를 적용해도 6%대의 금리를 내야 한다. 이는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현재 5%대 초반인 것과 비교해 부담스러운 금리 수준이다.

한은 금융안정분석국 조태식 차장은 이처럼 대출 한도가 낮고 금리가 비싼 것에 대해 "현재 판매 중인 역모기지론 상품들이 담보주택가격, 이자율, 차입자의 생존기간 변동 등에 따른 위험을 대부분 차입자에게 전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따라서 선진국처럼 은행들이 지급 방식을 종신지급형.확정기간지급형.신용한도형.종신혼합형 등으로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 국내에선 10~15년간으로 제한된 확정기간지급형밖에 없다. 따라서 개인연금 등 다른 노후보장 수단 없이 계약기간을 초과해 살게 된다면 노후가 궁핍해질 수도 있다.

정부가 역모기지론을 사회보장제도의 보완수단으로 보고 지원을 늘릴 필요도 있다. 조 차장은 "담보주택에 대한 재산세 등 보유세 감면, 대출 이자비용에 대한 소득공제 지원 등을 통해 실질 이자 부담을 낮춰주는 방안을 검토할 만하다"고 말했다. 미국에선 모기지론 취급에 따른 금융회사의 손실을 정부가 일정부분 보전해주는 한편 금융회사가 파산할 경우 차입자에게 약정된 월 대출금을 대신 지급해주고 있다.

김동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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