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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화나 합법화의 출발지, 콜로라도를 다녀오다

중앙일보

입력

오락용 마리화나 판매가 합법화 된 콜로라도주 덴버의 마리화나 판매점. 이곳에서 21세 이상 성인은 한번에 최대 1온스까지 마리화나를 구입할 수 있다.

지난 2일 미국 시애틀에서 덴버로 가는 비행기 안. 자신을 콜로라도주 운수부(Department of Transportation) 소속 공무원이라고 소개한 옆자리 남성에게 "마리화나 합법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콜로라도주는 미국 최초로 오락용 마리화나를 합법화한 주다. 그는 대뜸 "성급한 조치였다”면서 “당장 마리화나 피고 운전하는 것은 어떻게 막을 것이냐가 운수부의 고민"이라고 털어놨다.

그러자 앞뒤, 옆에 앉은 사람들까지 저마다 입을 열기 시작했다. “마리화나가 담배보다 중독성이 없다” “애초 규제한 게 잘못이었다” “나이 제한이 왜 필요하냐”는 의견까지 논쟁은 비행을 하는 3시간 내내 이어졌다. 미국 내에서도 마리화나가 얼마나 휘발성 있는 이슈인지 잘 보여줬다.

미국 중간선거가 열린 지난 4일 워싱턴DC와 오레곤, 알래스카, 플로리다에선 오락용 마리화나를 합법화 할 지 말 지를 묻는 주민투표가 함께 진행됐다. 개표 결과 플로리다를 제외한 3개 주에선 찬성이 주 헌법 개정선인 60%를 넘어 통과됐다. 괌에서도 의료용 마리화나를 허용하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 콜로라도주와 워싱턴주에선 이미 2년 전 선거에서 같은 투표가 진행돼 통과됐다.

콜로라도주에서 오락용 마리화나가 합법적으로 팔리기 시작한 지 이제 10개월째. 한국언론진흥재단의 ‘2014 한·미 언론프로그램’ 일환으로 미국 중간선거 현장을 찾아갔던 기자는 콜로라도의 주도 덴버의 한 마리화나 상점을 취재할 기회를 가졌다.

매장 이름은 '스타버즈(Starbuds)'. 세계적인 커피 전문점 ‘스타벅스’에서 가게 이름을 따온 것이다. 주인인 브라이언 루덴은 "미국 전체에서 마리화나가 합법화되는 것은 시간문제인 만큼 마리화나 업계의 스타벅스가 돼 각 주로 지점을 넓혀 가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실제 커피전문점에서 여러 종류의 커피를 고를 수 있듯, 이곳에서도 퍼플코튼?타호?노던라이트 등 여러 종류 향의 마리화나를 전시해 놓고 팔았다. 홍보물에는 7g마다 10달러를 깎아주는 쿠폰이 붙어 있고, 사는 양에 따라 회원카드에 도장을 찍어주며 고객관리도 했다.

덴버의 마리화나 상점인 스타버드의 브라이언 루덴 사장. 다양한 종류의 마리화나 제품을 꺼내 보여주며 각각에 대해 설명했다.

루덴 사장은 변호사였다. 5년 전 마리화나 산업이 커질 것을 예상한 그는 덴버에 1호점을 낸 뒤 콜로라도 내에 매장 5곳을 추가로 열었다. 본점 매장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직접 농장을 운영하며 직접 물량을 공급했다. 매장 2층에선 시범적으로 마리화나를 직접 키우는 공간을 만들어 홍보용으로도 활용하고 있었다. 자연광에 노출 시켜도 보고, LED등을 쪼이기도 하는 등 여러 방식으로 마리화나를 키우면서 최상품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루덴 사장은 매장에서 시범적으로 마리화나를 여러 방식으로 키우며 고객들에게 홍보 수단으로 삼기도 했다.>

인터뷰를 진행한 1시간 여 동안 스무 명 이상의 손님이 다녀갔다. 백인과 흑인, 히스패닉, 남성과 여성 할 것 없이 인종과 성별 구분 없이 소비층도 다양했다. 자신을 영업사원이라고 소개한 한 백인 남성은 "한번에 일주일 치씩을 사간다"면서 "합법화 이후 더 많이 이용하게 되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루덴 사장은 "지역 주민 손님도 많지만 절반 가까이가 외부 주에서 왔거나 외국인 손님들"이라고 말했다. (아직 한국인 손님은 못 봤다고 했다.) 그만큼 마리화나 합법화가 지역 경제에도 도움이 되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실제 존 히켄루퍼 콜로라도 주지사는 마리화나 합법화를 자신의 치적으로 내세우고 있다. 그는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마리화나 합법화와 관련해 “다른 주가 힘들어하는 동안 콜로라도의 경제는 번영하고 있다. 부동산 수요도 크게 올랐으며 집값도 지난해 8.7% 올랐다”고 밝힌 바 있다. 마리화나 합법화로 인해 콜로라도주가 올 한해 거둬들일 것으로 예상되는 세수 증가액은 1억3400만 달러. 19세기 황금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였던 이곳이 21세기에는 마리화나로 손님을 끌고 있는 셈이었다.

마리화나를 넣은 초컬릿과 캔디 등 각종 응용상품. 이 매장에서는 스무 종의 응용상품을 비치해 놓고 팔고 있었다.

마리화나가 합법화 되면서 단지 피우기 위한 것뿐 아니라 먹거나 바를 수 있는 응용상품도 쏟아져 나왔다. 루덴의 매장에만 전시돼 있는 상품만 해도 20여 종. 마리화나를 넣은 과자와 사탕, 브라우니부터 마리화나를 성분이 있는 로션과 마사지오일도 있었다. 마리화나를 넣었다는 브라우니와 사탕은 겉으로 봐선 일반 제품과 전혀 구분이 되지 않았다. 뒷면에 마리화나의 강도를 표시한 ‘THC 44%’라는 스티커가 없었다면 어린이는 물론 성인도 알아차리기 힘든 수준이었다. 실제로 이 부분은 미국 내에서도 논란의 대상이다.

기독교 단체에서는 “학교에 마리화나 과자를 가져 온 어린이들이 있었다””10대에 마리화나를 피우면 지능이 낮아진다”는 등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제기하고 있다. 루덴 사장에게도 이런 문제를 지적하자 “미성년자들이 마리화나에 접근할 가능성이 높아질 수는 있겠지만 그래도 규제를 하는 것 보다는 풀어주는 게 더 낫다는 게 대부분 미국인들의 생각"이라고 반박했다.

마리화나를 넣은 과자 제품. 뒷면에 THC라는 마리화나 함량 표시 말고는 마리화나 응용제품이라는 구분을 전혀 할 수 없다.

실제 뉴욕타임스는 지난 달 마리화나 합법화를 지지한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히기도 했다. “우리가 마리화나 합법화를 지지하는 이유”라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서였는데 “뉴욕타임스 편집국은 마리화나 금지법 개혁에 대한 국민의 요구가 높아짐에 따라 수많은 회의를 연 끝에 이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연방정부는 마리화나 금지법을 폐지해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주류 매체로서는 처음으로 마리화나에 대한 입장을 밝힌 것이었다.

지난 11일 뉴욕타임스 본사에서 만난 에릭 오웰스 수석 부에디터에게 이와 관련한 의견을 물을 수 있었다. 오웰스는 마리화나 합법화를 찬성하는 이유에 대해 “불법화 하는 데 따르는 비용이 너무 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20세기 초 미국에서 금주령이 내려진 동안에도 사람들은 몰래 술을 마셨고, 또 이 때문에 많은 시민들이 범죄자가 됐다. 마찬가지로 마리화나를 불법으로 규정함으로써 많은 이들이 범죄자가 되고, 또 이를 단속하는 데도 많은 비용이 든다는 이야기였다.

미 연방수사국(FBI)에 따르면 2012년 한 해 동안 마리화나 소지 혐의로 체포된 경우가 65만8000건이었다. 특히 젊은 흑인들의 체포 비율이 높았는데 이렇게 어린 나이에 전과 기록을 남김으로써 평생 범죄자의 삶을 살게 되는 악순환의 시작점이 될 수도 있다는 게 뉴욕타임스의 지적이었다. 오웰스는 “마리화나를 피우는 것 보다 오히려 술을 마시도록 허용하는 게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더 위험하다”면서 “그런데도 마리화나만 불법으로 규정해 놓음으로써 치러야 할 비용이 너무 크다”고 이야기 했다.

최근 뉴욕타임스에 실린 마리화나 합법화 지지 단체의 광고. 뉴욕타임스의 마리화나 합법화 지지 입장 발표 이후 이런 광고들이 더 자주 실리고 있다.

연방정부 차원에서는 여전히 마리화나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일단은 각 주의 판단에 맡기겠다는 거다. 그런데 이번 중간선거에서 3개 주에서 추가로 합법화가 결정됨에 따라 연방정부도 이제 뒷짐만 지고 있을 수는 없게 됐다. 다음 선거에서 합법화 여부를 묻는 주민선거를 진행하겠다는 주가 줄을 서고 있다. 과연 21세기의 금주령이 풀리면서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을 것인 지, 아니면 술?담배에 이은 새로운 합법화된 기호품의 등장으로 더 큰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인지, 미국 전체가 중요한 시험대에 올랐다.

덴버?뉴욕=김필규 JTBC 기자 phil9@joongang.co.kr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2014 한·미 언론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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