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다툼에 살해위협까지…카타르월드컵 논란 증폭

중앙일보

입력

2022년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 개최지 선정과 관련한 논란이 진흙탕 싸움으로 번지고 있다. FIFA가 의혹 규명에 소극적인 가운데, 조사 과정에 자진 참여한 내부고발자가 살해 위협에 시달린다는 사실이 공개돼 논란이 증폭됐다.

영국 스포츠전문채널 '스카이스포츠' 인터넷 홈페이지는 20일 "2022년 월드컵 개최지 선정 과정에서 발생한 비리에 대해 증언한 내부고발자 파에드라 알 마지드가 신변에 위협을 느껴 미국 연방수사국(FBI)의 보호를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알 마지드는 카타르 월드컵 개최지 선정 과정의 비리 여부를 추적한 마이클 가르시아 FIFA 조사관에게 관련 정보를 털어놓은 75명의 증인 중 한 명이다. 그는 각종 문서와 데이타, 녹음 파일 등 관련 자료를 함께 제출해 비리 혐의를 입증하는데 기여했다. 알 마지드는 "얼마 전 FBI 요원들이 찾아와 누군가가 나와 내 가족을 노린다는 사실을 알렸다"면서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공포심을 느꼈다"고 말했다.

FIFA는 최근 불거진 카타르 월드컵 유치 비리 의혹에 대해 소극적이고 무성의한 대처로 일관해 전 세계 축구 관계자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가르시아 조사관이 완성한 420쪽 분량의 보고서 중 42쪽의 요약본만 지난 13일에 공개하며 비리 의혹에 대해 무혐의 처리했다가 화를 키웠다. 그레그 다이크 잉글랜드 축구협회장을 비롯한 축구계 인사들이 "보고서 원문을 공개하라"며 강하게 압박했지만, FIFA는 빗장을 풀지 않고 있다.

제프 블래터 FIFA 회장은 19일 FIFA 홈페이지를 통해 "우리에겐 숨길 것이 전혀 없다. FIFA가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다 했으며, 남은 일은 독립된 외부 기관이 할 것"이라고 밝혀 보고서 공개를 에둘러 거부했다. 아울러 "내부 기밀 문건을 공개하는 건 FIFA의 규정은 물론, FIFA 본부가 위치한 스위스 법에도 어긋난다"고도 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규정과 어떤 법률에 저촉되는 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대신 FIFA는 요약본 보고서에 소개된 일부 비리 혐의자에 대해 19일 스위스 검찰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FIFA는 성명을 내고 "가르시아 담당관의 조사 결과 불법 행동이 의심되는 사람들에 대해 법적 처벌 절차를 밟으려는 것"이라면서 "불법행위 의심자들 중 일부는 국제적인 자금 거래 행위까지 밝혀내야하는 만큼, 사법 당국에 수사를 맡기는 게 합리적이라는 판단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FIFA의 갑작스런 결정에 대해 축구계 인사들은 "보고서 원본 공개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져 궁지에 몰린 FIFA가 물타기를 하려한다"고 비판하고 있다.

비리 의혹 조사를 진두지휘한 가르시아 조사관은 FIFA가 보고서 요약본만 공개하며 "개최지 선정 과정에 문제가 없다"고 공표하자 "FIFA의 발표는 엉터리"라며 반박해 이목을 집중시켰다. "지난 2년 간 75명을 만나 인터뷰했고, 20만 건의 자료를 첨부한 420쪽 분량의 보고서를 완성했다"고 밝힌 그는 "FIFA는 내가 제출한 보고서 원본을 즉각 공개해 의혹을 규명해야한다"고 주장했다.

보고서 내용 중 일부는 언론을 통해 공개됐다. 관련 보도에 따르면 2022년 월드컵을 유치한 카타르는 2010년 아프리카축구연맹 총회 개최 자금을 댔다. 일본은 FIFA 집행위원 부인들에게 명품 가방을 나눠줬고, 잉글랜드는 북중미축구연맹 임원들에게 3만5000파운드(6000만원) 상당의 식사를 대접했다. 보고서에는 정몽준 대한축구협회 명예회장이 FIFA 집행위원들에게 '지구촌 축구 발전을 위해 7억7000만 달러(8500억 원)의 기금을 조성하겠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낸 사실도 담겼다.

송지훈 기자 mil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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