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청테이프 유출 재미교포 구속…삼성에 5억 요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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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기부 불법 도청 테이프 유출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는 29일 테이프를 언론에 유출하고 테이프를 넘기는 대가로 금품을 뜯어내려한 혐의(통신비밀보호법 위반 및 공갈 미수)로 재미교포 박인회(58)씨를 구속했다.

서울중앙지법 김재협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불법 도청 결과물이란 걸 알고도 금품을 갈취하려했고, 거절당하자 앙심을 품고 보도기관에 제공하는 등 죄질이 불량한 데다 도주 및 증거 인멸 우려가 있는 데다 추가 도청 자료 존재 여부를 밝히기 위해 신병을 격리할 필요가 있다"고 구속 사유를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박씨는 1999년 9월 하순 사업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게 되자 안기부 특수도청조직 미림의 전 팀장 공운영씨와 함께 삼성그룹 이학수 비서실장과 홍석현 중앙일보 사장의 대화 내용을 도청한 테이프 녹취록을 들고 이학수 당시 부회장을 찾아가 금품을 요구한 혐의를 받고 있다.

조사 결과 박씨는 폐기물 처리업체를 운영하면서 사업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던 중 안기부 퇴직 직원 임모씨를 통해 퇴직 후 경제적으로 불안한 상태였던 공씨를 소개받아 범행을 모의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 영장에는 박씨 등이 이학수 부회장을 만난 자리에서 녹취록을 제시하면서 테이프를 넘기는 대가로 5억원을 요구하고, 삼성측이 거절하면 언론에 제보하겠다고 협박했지만 이 부회장은 요구를 수용하지 않고 국정원에 신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씨 등은 또 이 부회장을 만난 날 박지원 문화관광부 장관을 찾아가 문제의 녹취록을 제시한 뒤 임씨의 복직을 부탁한 것으로 드러났다.

박씨는 금품 요구와 복직 청탁이 실패한 뒤 작년 12월 30일 서울 상도동 자신의 아버지 집 앞 도로에서 도청 테이프를 MBC 기자에게 전달했고, 이달 26일 미국으로 출국을 시도하다 국정원에 연행됐다.

박씨는 29일 영장실질심사에서 불법 녹음테이프를 MBC에 넘겨준 이유가 뭐냐는 질문에 "한국사회의 투명성을 높이고, 선진화ㆍ민주화를 시키기 위해 테이프를 넘겼다"고 대답했다.

그는 또 그런 마음에서 테이프를 방송사에 넘긴 것이라면 왜 삼성에 돈을 요구했느냐는 검사의 추궁에 "안기부에서 면직된 사람들의 사정이 어려웠고, 복직에 도움이 될 수도 있었고…저도 사정이 어려워서…"라며 말끝을 흐렸다.

디지털뉴스센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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