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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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호박꽃>
유병수

<전북리리시주현동224의1>
호박꽃도 꽃이냐고
웃는 이도 있데마는
흙냄새 물씬 서린
토장국 감칠맛을
한평생 산해진미로
살다 가신 어머니.
반딧불 초롱 잡고
방황하는 이 아들을
한포기 지란이듯
치마폭에 불러들여
물동이 또아리처럼
끼고 돌던 고살길.
호박같은 세상살이
둥글둥글 달이 뜨면
동서들 다독이는
종가집 맏며느리
이끼 낀 돌담모툼이
웃음꽃도 푸짐했지.

<기다림>
금경자

<경남거제군 장승포국민학교>
오늘

연휴라서
아이들이 오겠거니
깻잎 따서 절여두고
샘물 길어 오이 냉채
이마에
흐른 땀으로
간맞추는 어미 마음.
뱃길도 잔잔한데
아니 올리 없건마는
이제나
저제나
두눈 두귀 밝혀 봐도
해마저
서산에 지니
울먹이는 사립문.

<봄날>
정수자

<경기도용인군수기면신풍2리>
퇴근길에 마주친
이삿짐 뒤를 따라
보송보송 햇살피는
골목길로 들어서니
손수건 가슴에 달고
키를 재는 아이들.

<여름밤>
이재자

<경남진주시수정동33의7>
수수깡 울타리 위로
반딧불이 숨바꼭질하고
들판 위로 밤기차가
유령처럼 지나가면
엄마야, 선잠을 씹는
동생둘이 칭얼댔지.
유성이 긴 꼬리를
끌면서 흘러가고
모깃불 연기냄새가
마당 가득 번져나면
할머님 옛 이야기에
밤 깊은줄 몰랐었다.

<청계사행>
황인원

<경기도안양시호전동988의11>
싱그러운 정겨움에
어둠은 스러지고
개구리 울음소린
별가슴에 박혔다
산야의
짙은 내음에
휘어내린 초승달.
산새들의 연주는
푸른나무에 묶어두고
아들이 대견스러운
아버님의 눈자위처럼
맥박은
어느 틈엔가
물소리를 듣고 있다.

<옛날에는>
김문역

<서울진노구리화녀자대학병원공급실>

나 어릴제 어머니는
다듬이질 하시다가
방망이 늘어뜨리고
호박꽃 바라보시며,
누야가
시집 가던날,
울던 얘기 하셨다.

장독에서 손가락으로
장맛을 보시다가,
가랑잎 한 개쯤은
들어가도 괜찮았고.
석양을
바라 보시며,
먼 먼 생각 하셨다.

빈 쌀독 박박 긁어
광에서 나오시다가,
병아리떼 조르르르
고개 반듯 들고 오면,
가축도
자식 기르듯,
쌀 한줌 뿌리셨다.

<어머니>
박총선

<경북포항시양학동 학장아파트13동402호>
칠백리 머나먼길
입덧하는 딸위하여
땀흘려 가꾸신
과일 이고 들고 달려오신
그 사랑 알알이 스며
그빛 더욱 곱더이다.
서러움 필적마다
불러보는 어머니
작식을 낳아야만 안다시던
그 사랑
보채는 아이 달래며
깊은 그뜻 헤아리오
여리고 어린새싹
따뜻하신 사랑으로
비바람 드센날도
곱게 곱게 컸읍니다
새해도 행복한 나날
만수무강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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