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세 이후의 사회 생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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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유엔의 세계 노인 회의를 계기로 노인 문제에 대한 내외의 관심이 새삼 높아지고 있다. 우리 나라도 제5공화국의 국정 지표를 복지 사회 건설에 두면서 노인 복지를 국민의 기본권으로 인식하게 됐으며 가족 제도의 급진적인 변화와 함께 문제의 중대성이 점차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우리 나라의 노인 문제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지 않은 것은 노령 인구가 선진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데다 전통적인 효 사상 때문에 노인은 노후에도 자녀들과 동거함으로써 국가나 사회에 부양 책임이 전가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평균 수명의 연장과 함께 노인 인구의 급증 추세를 보이고 있어 80년 현재 65세 이상의 노령 인구는 전 인구의 4%로 1백40만명을 돌파했다. 이 추세는 전국 인구 증가율 1·4%를 훨씬 웃도는 3·7%의 증가율을 보인 것이며 2천년에는 전 인구의 6%가 노령 인구로 채워질 전망이다.
아울러 과거 20년간 진행돼온 핵가족화는 노인과 자녀의 별거를 촉진시켰으며 이 같은 가족 제도의 변화는 더욱 급속화 할 것으로 전망돼 노인 문제의 발생을 미연에 방지하는 다각적인 대책이 요망된다.
노인 문제를 다룸에 있어 노인의 취업난, 무저축, 노후 연금 제도의 미실시 등이 최대 난제로 꼽히고 있으나 이것은 모두 노인이 된 이후의 문제들이며 국가 재원의 부족과 사회 여건의 미비 등으로 매우 해결하기 힘든 문제다.
이보다도 한국적 노인 문제의 가장 심각한 국면은 조기 퇴직에 있다. 통계에 따르면 전체 기업의 93·6%가 정년제를 채택하고 있고 이들 기업의 80%가 정년 연령을 55세로 정하고 있다. 심지어는 50세 정년제를 채택하고 있는 기업도 있다.
55세 정년제의 비합리성은 누차 지적돼 왔으나 우선 이것은 노인의 생리 현상을 무시한 제도라는데 문제가 있다.
그동안 의료 시술의 발달과 영양 상태의 호전, 그리고 개인의 건강에 대한 높은 관심 등으로 우리 나라의 평균 수명은 80년 현재 남자 63세, 여자 69세에 이르렀으며 장차 70세를 돌파할 날도 멀지 않게 됐다.
55세 정년은 우리 나라의 평균 수명이 30세에 불과했던 금세기 초의 일본 제도를 그대로 물려받은 것으로 국민의 건강 상태가 비약적으로 호전된 지금이나 향후에는 전혀 걸맞지 않은 제도임이 분명하다.
물론 업종에 따라 55세 이하에서 퇴직해야 할 분야도 있으나 그것은 기업 내부의 직무 변경으로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55세 정년제는 또 매우 비인간적인 제도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통계에 따르면 남자가 55세에 이르렀을 때는 첫 자녀를 막 혼인시키고 두번째, 세번째 자녀를 교육시켜야할 시기다. 자녀의 결혼 준비, 고등 교육비, 그리고 노후에 대비한 약간의 저축을 위해 가장 왕성히 활동해야 할 때 정년 퇴직이라는 생계 수입의 단절을 맞아야 한다.
물론 퇴직금 제도가 있으나 한국적 현실에서 이것은 노후의 생계를 보장하기엔 너무나 부족한 것이다. 결국 55세 정년제는 노후의 생계를 궁핍에 몰아 넣는 비극을 초래하는 것이며, 국가나 사회가 이 부담을 떠맡아야 할 어려운 상황을 발생시킨다. 건강도 좋고 근로 의욕도 왕성한 나이에 노인 아닌 노인으로 전락되는 것은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 매우 불행한 일임은 자명한 일이다.
55세 정년제가 청년층의 일자리를 넓히는, 대국적인 면에서 긍정적 측면도 있으나 노인 복지를 위한 고 부담의 재정 지출을 고려하면 결국 마찬가지 얘기가 된다. 고려하면 결국 마찬가지 얘기가 된다. 고용 기회의 창출은 국가 경제 전반에 걸쳐 이루어져야지 노련한 경험으로 무장된 원숙한 전문인들을 배제하는데서 찾는 것은 매우 궁색한 일이다.
선진국도 1950년대까지는 55∼60세가 정년 연령이었으나 70년대부터는 65∼70세로 연장했으며 미국 같은 나라에서는 아예 정년제를 폐지했다. 이것은 노인 복지에 소요되는 자금이 엄청나게 불어남에 따라 국가 재정이 이를 지탱할 수 없어 취해진 조처이기도하나 결국 노인 문제의 발생을 미연에 막자는 의도도 있다.
55세에 퇴직해서 노인 복지법이 정한 보호 연령인 65세가 될 때까지 과연 이 노인 아닌 노인들은 어디서 무얼 해야 하는가.
국가 사회를 건설한 주역의 위치에 놓여야할 이 연령층들이 무위하게 보내는 일처럼 개인적, 국가적 낭비도 없을 것이니 차제에 우리 사회의 정년제는 획기적인 전환이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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