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기록인데…사실대로 써야지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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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일본 역사교과서에 대한 최근 일본각료들의 망언을 놓고 끓어오르는 국민들의 분노 때문일까, 더욱 후덥지근하게 느껴지는 한 여름날, 이선근 박사(78)를 서울 강남구 논현동 자택으로 찾아갔다.
『일본인들이 나에게「검사」란 별명을 붙여준 것은 69년 2월의 일이지요』정갈한 모시한복 차림. 대뜸 13년 전의 얘기부터 꺼내는 이박사의 카랑카랑한 목소리에서 요즈음 건강이 한결 좋아진 느낌을 받았다.
『한일협력위원회 창립 때로 기억됩니다. 그때 대표단이 일본에 가는데 내가 가리라곤 생각지도 않았어요. 고위층의 급한 분부가 있어 다급하게 이루어진 일이지요. 정치·경제·문화분과로 나눠져 있었는데 나는 문화분과 위원장으로 갔습니다.
리셉션에서부터 회의과정에까지 마음에 안 드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내가 얘기했지요. 한일 협력해서 뭘 하겠다는 거냐. 개인적으로는 친일파·배일파·지일 파가 있겠지만 나는 배일 파다.
14세의 중학 2학년생(3·1운동당시)에 헌병대에 끌려가 고문으로 두 번 죽었다가 살아났다.
너희들 그런 일 당해봤느냐. 시대가 바뀌어, 마음으로 용서하고 관용할 수 있지만 그 기억을 어떻게 잊겠느냐. 너희가 우리에게 언제 한번「용서」청한 적이 있느냐 하고 말입니다.
이렇게 따끔따끔하게 퍼부었더니 졸던 사람들도 말똥말똥 눈올 뜨고 그때부터 함부로 말하지도 않고 이상야릇한 회의분위기도 일신되더라고.『그 후 부터 일본인들은 나만 보면「검사가 왔다」고들 얘기합디다.
그는 일본인들을 대할 땐 개인적이건 국가적 차원에서건 언제나 그 자세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일본의 책임 있는 관료들이 교과서문제와 관련, 한일합방은 정당하다는 등 한국인을 일본으로 끌고 간 것은 징용령에 의한 합법적인 행위라는 등 납득할 수 없는 발언으로 분노를 사고있는데요.
『이 문제는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닙니다. 깊은 뿌리를 갖고 있어요. 따라서 근본적인 검토가 필요합니다. 이 박사는 일본인의 국민성을 ①섬나라(도국)근성 ②모방성 ③배은망덕으로 정리해 볼 수 있다고 말한다.『섬나라 근성은 끊임없이 독선과 아집을 낳습니다. 이것은 군국·침략주의의 원동력이지요.
또 창조력이 없는 모방성은 마치 원숭이와도 같이 흉내의 천재입니다. 일본은 전근대에선 한국한테 배웠고 근대화는 미국과 영국에서 크게 배웠지요. 물론 흉내낸 것이지만…. 18세기초까지 일본은 국제무대에서 우릴 앞지르지 못했어요. 명치유신을 거치면서 영·미의 도움으로 근대화롤 이룩하게 되지요.
이박사가 일본인의「배은망덕」성을 얘기할 때는 한층 언성을 높였다.『그러나 어땠습니까. 옛날에 도움을 줬던 우리에겐 임진왜란을 일으켜 못살게 굴었고 급기야는 한일합방이라 하여 국권까지 탈취하지 않았습니까. 미국과 영국엔 어땠어요. 일본인들은 그들의 근대화 과정에서 가장 도움을 줬던 영·미에 대해 그 적국인 독일·이탈리아와 손잡고 도전, 대동아 전쟁까지 일으키지 않았습니까. 그들의 역사를 훑어보면 바로 도움을 줬던 나라를 역습, 배은망덕을 떡 먹듯 하는 사실로 일관하고 있음을 금방 알 수 있다. 그는 덧붙인다.
-그들의 이러한 속성은 언제 나타나지요.
『약할 땐 수그러지고 강할 땐 뽐냅니다. 해방직 후 숨죽이고 있더니 이젠 달라졌어요. 경제대국에 만족하질 못해요. 배후 열강과의 관계도 있지만 군비확장의 기운을 타고 군국주의 잔재의식이 되살아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의식 속에선 그들이 일제하 식민정책을 미화하고 왜곡하려는 행위는 결코 버릴 수 없는 버릇이라고 이 박사는·꼬집었다. 그는 이러한 행위가 처음 있는 일이 아니며, 마찬가지로 앞으로도 또 나타날 것이라고 보았다.
-이에 대한 우리의 자세랄까 대처방안에 대해서 말씀해 추시지요.『흔들림이 없어야 합니다. 그들은 상대방의 약한 점이 보이면 사정없이 짓눌러대고, 강하게 나오면 약해져요.
그 동안 한국의 어려운 경제를 만만히 본 것 같아요. 우리국민·경부·교육자 모두가 의연히 대처하면 문제될게 없어요. 우리가 국가적 차원에서 강력하게 나가면 그런 것 하라해도 못 합니다.
이 박사는 흔들림이 있으면 친일파가 다시금 고개를 들 것 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부의 관계부처가 좀 더 강력하게 대처할 필요가 있다고 아쉬워했다. 역사문제를 포함한 한일관계의 현안문제는 모두 평소에 철저히 정리를 해뒀다가 즉각 단호하게 대응해야지 일이 터지고 난 뒤에야「학계의견을 들어 우리 입장을 정한다」는 등 지체해선 곤란하다는 것.
이 박사는 군국주의의 탈을 쓴 일본의 어떠한 추파도 용납해선 안 된다면서 아직도 청산하지 못하고 그들 마음속에 남아있는 군국주의의 불씨를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가 일제를 마음으로 용서해 줄 수야 있지만 잊을 수는 없는 일이지요. 역사는 기록인데 기록을 사실대로 해야지요]
이 박사는 요즈음 건강과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일생의 연구성과도 정리할 겸 대한민국사 기초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이근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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