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기업의 폐업신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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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노사문제로 진통을 거듭하던 컨트롤테이터 한국지사가 결국 문을 닫고 말았다. 물론 폐업을 단행하기까지에는 경영이 악화된 측면도 있겠으나 노사분규가 주된 원인이 되어 이런 사태까지 번지게 된 것은 한마디로 불행한 일이다.
종업원이나 기업주나 모두가 얻은 것은 하나도 없다. 잃은 것뿐이다. 서로 한 발짝씩 양보했던들 이같이 불행한 사태는 극복할 수 있지 않았을까.
문제의 기업 컨트롤 데이터 사는 67년 9월에 설립된 미국의 자회사로 3백 49명의 종업원이 일하고 있다. 동일업종에선 평판이 나쁘지 않은 회사였다. 임금도 타사보다 3O%가량 높고 연 4백%의 보너스에 하루 8시간, 과 5일제 근무였다.
이 회사의 분규가 악화된 것은 임금인상에는 그럭저럭 노사가 타협점을 찾았으나` 해고자 복직문제에서 결정적인 대립이 있었기 때문이다. 회사측이 극한투쟁을 벌이는 도시산업선교회계열의 종업원을 복직시키려 하지 않은 것이 분쟁의 구실이 되었다.
여기서 누구의 잘 잘못을 따지기에 앞서 극한적인 노사대립이 결국 어떤 사태를 몰고 왔는지 그 결과를 중시해야한다.
기업이 도산하면 누가 손해를 보는가. 종업원도 기업주도 손해보긴 마찬가지다. 노사간의 극한대립으로 잘된 기업주도 없고 잘 살게된 종업원도 없다. 이것은 너무나 평범한 진실이다. 한마디로 노사는 같은 배에 탄 공동운명체이며 분규가 시작됐을 때 이 같은 공동체의식을 발휘하지 못한 것이 비극이었다.
한편 기업 측이 그 동안 경영개선을 위해 얼마나 성실히 노력했는지도 의문이다. 싼 임금의 노동력에 의존하는 기업은 세계적으로 사양세에 있다.
여기에 안주해서 경영합리화를 소홀히 하면 그 기업은 경영이 악화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울러 기업에 큰 이윤이 생길 때는 적절히 종업원에게 분배함으로써 생산성 향상을 자극해야 한다.
노조 측에도 문제는 있다. 불황기일수록 노사가 신뢰로써 협조해야함은 당연한 일이다. 노사분규가 아닌 일반적인 경영악화로 문을 닫게된 공장이 종업원들의 희생적인 노력으로 재생한 경우를 국내외에서 가끔 본다.
또 파국 일보직전까지 간 경우에도 노사의 협조로 위기를 극복하고 생산성을 올리는 기업도 가끔 본다.
외국도 마찬가지다. 전미 자동차노조나 서독 금속노조가 올해 들어 인건비 삭감과 실질임금 감소를 군말 없이 받아들인 것은 당장의 실업을 막자는 노조부들의 협조에서 비롯되었다.「파업천국」인 미국마저도 81년의 스트라이크 건수가 42년만에 최저를 기록했다.
결국 불황은 노사의 공동의 적이며, 이것은 공동운명체적 결속으로밖에 물리칠 수 없는 것이다.
도산의 원인이 과거에는 자주 기업인의 몰지각한 사욕 때문인 적도 있었다. 경영 합리화나 종업원의 복지후생은 외면하고 회사재산을 빼돌린 결과 기업은 망해도 기업인은 산다는 말까지 유행했었다. 그러나 이들 악덕기업인들은 그때마다 사회의 지탄을 받고 오명을 남겼다.
이제 이런 기업인들은 이 사회에 발붙일 수가 없으며 종업원의 성숙한 의식이 우선 이를 용납 못할 것이다.
이 같은 배경을 고려할 때 도시산업선교회는 기업도 살고 종업원의 복지도 향상되는 테두리 안에서 그 영향력을 행사해야지, 기업자체를 망하게 해서는 누구로부터도 환영받지 못할 것이다. 헐벗고 불쌍한 사람들을 구제한다는 본래의 취지가 오히려 이들을 더욱 헐벗게 한다면 그 같은 모순도 없을 것이다. 이번 사태는 우리기업에 많은 교훈을 남겼다. 노사는 협상 대화로써 이 같은 비극의 잉태를 사전에 막고 기업이란 공동운명체를 반석 위에 올려놓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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