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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서울대 공대 교수들의 연구비 횡령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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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서울대 공대 교수 2명이 연구비 횡령 혐의로 잇따라 구속됐다. 같은 대학 교수 8명도 동일한 혐의로 검찰의 조사를 받고 있다. 구속된 모 교수는 유령업체 명의의 허위 세금계산서를 이용해 무려 16억여원을 가로챘다고 한다. 더구나 그는 출처가 의심되는 50억원가량의 예금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도대체 착복한 연구비가 얼마나 되는지 어안이 벙벙하다.

연구비를 빼돌리는 수법은 사기꾼을 뺨친다. 폐업한 업체로부터 재료를 매입한 것처럼 가짜 세금계산서를 작성하거나 실제보다 더 많은 실험기자재를 구입한 양 엉터리 세금계산서를 발급받는다. 또 보조 연구원으로 참여하는 대학원생들의 급여를 일부만 지급하는 파렴치한 행동도 서슴지 않는다. 교수의 양심이 고작 이런 수준인 대학에서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가르친다는 말인가. 정말로 연구비는 먼저 보는 사람이 임자라는 말이 맞다.

횡령한 연구비를 아파트 분양계약금과 신용카드 결제 대금으로 유용했다고 하니 교수들의 타락상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간다. 교수사회의 고질적인 병폐이자 관행으로 굳어버린 연구비 비리는 연구비 관리 시스템이 허술한 탓이다. 연구 용역을 따낸 교수가 대학원생의 급여 지급부터 물품 구매까지 연구비를 독단적으로 집행하기 때문에 금전적인 유혹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연구비 비리를 근절할 특단의 대책이 시급하다. 연구비 관리 방식을 변경해 연구비를 지원하는 과기부.산자부.정통부가 직접 연구비의 용처를 감독해야 한다. 연구비 전담 부서를 둬 실험장치.재료의 공급과 인건비 지출을 맡기고 교수는 연구에 집중토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특히 교수에게 얼마 안 되는 연구활동비만 허용하는 현행 규정을 대폭 수정해 교수의 인건비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연구 성과에 따라 합당한 인센티브를 줘야 한다. 제도가 달라진다 해도 교수들의 의식구조에 변화가 없는 한 부정은 상존하게 마련이다. 교수사회의 대대적인 도덕성 회복 운동도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