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도청 테이프 유출] 검찰 "공소시효 끝난 사안 수사 안 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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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일 서울 서초동 대검청사로 출근하는 김종빈 검찰총장이 취재진의 최근 현안에 대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안기부 불법 도청 테이프' 수사를 떠안게 된 검찰이 고민에 빠졌다. 참여연대가 이날 도청 테이프에 등장하는 인사들을 특가법상 뇌물죄 등의 혐의로 고발하면서 어떤 식으로든 이 문제에 대해 결론을 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검찰 수뇌부는 안기부의 불법 도청 테이프 내용을 근거로 한 수사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 "정도가 아닌 수사"=대다수의 검사는 불법 도청 테이프에 근거한 수사는 정도가 아니라는 견해를 밝히고 있다. 검찰 고위 관계자는 "수사는 구체적인 혐의를 근거로 해야 하며, 공소시효가 완성된 사건에 대해서는 수사를 개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 "공소시효가 지난 것을 수사해야 된다면 임진왜란 때 왜구에 부역했던 것도 다 조사해야 하는 것과 같다"고 설명했다.

대검의 한 간부는 "수천 개의 불법 도청 자료가 하나씩 공개될 때마다 관련자들을 불러 범죄 혐의를 수사하게 되면 사회가 큰 혼란에 빠질 것"이라며 "불법 도청의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라도 수사를 안 하는 게 낫다"고 지적했다. 불법 도청 자료를 근거로 수사를 함으로써 얻는 득보다, 사생활 및 인권 침해 가능성 등 실이 더 클 것으로 본 것이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검사는 "불법 도청 테이프를 재판의 증거로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조작 가능성 등에 대한 우려 때문"이라며 수사 착수 자체를 반대했다. 이는 '독수(毒樹)의 과실'원칙 때문이다. 독수의 과실이란 독이 든 나무에 열린 열매에도 독이 들어 있다는 뜻이다. 고문과 도청 등 위법한 방법으로 수집된 증거 역시 불법이기 때문에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는 법 원칙이다.

검찰은 현재 불법 도청 자료는 증거로 사용하지 않는 것과 비슷하게,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않고 다른 사람의 비리를 진정하는 무기명 투서 또는 고소.고발 사건 등에 대해서는 아예 수사 자체를 하지 않고 있다.

◆ "통비법 위반 검토"=언론의 도청 테이프 공개와 관련, 검찰은 통신비밀보호법의 위반 여부에 대해 법리적 검토에 들어갈 방침이다. 통비법은 도청 행위뿐 아니라 도청 내용의 누설을 금지하고 있다. 공소시효(7년)는 '누설' 시점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처벌대상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참여연대의 고발 내용을 수사하는 데는 어려움이 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불법 도청 테이프 외에 다른 증거를 확보하기가 어렵고 7년이나 지난 사안이어서 증거를 확보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녹취록에 나온 얘기는 계획을 논의한 것이 대부분이다. 이 논의가 구체적으로 실행됐는지 확인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야 대선 후보들에 대한 정치자금 지원 의혹은 정치자금법 공소시효(3년)가 훨씬 지나 돈을 준 쪽이나 받은 쪽 모두 처벌이 불가능한 상태다.

조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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