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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 졸속 개헌론 문제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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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강원택
서울대 교수·정치외교학

박근혜 대통령의 반대로 사라진 듯했던 개헌 이슈가 여야 의원 36명이 개헌특위 구성 결의안을 제출하면서 다시 부상했다. 흥미로운 점은 일반 국민과 비교할 때 유독 정치권에서 개헌에 대한 관심이 크다는 것이다. 최근 CBS 조사 결과는 개헌에 찬성하는 의원 수가 231 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개헌과 관련하여 정치권에서 가장 많이 제기하는 명분은 이른바 ‘제왕적 대통령’의 폐해다.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우리나라 대통령이 과연 ‘제왕적’인가 하는 데 대해 의구심을 갖고 있다. ‘제왕적’이라는 것은 대통령이 제도적 견제 없이 자기 마음대로 권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한국 대통령이 그런 강한 권력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종종 레임덕 신세가 되는 임기 후반의 대통령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임기 초반 혹은 중반이라고 해도 대통령의 인사권은 국회 인사청문회에서의 견제와 검증으로 번번이 좌절되었다.

대통령의 주요 정책은 과거에는 물리적 저항으로, 최근에는 국회 선진화법으로 인해 현실적으로 야당의 도움 없이는 제대로 추진하기 어렵게 되어 있다. 우리나라 대통령이 ‘제왕적’이라면 아마도 검찰이나 국세청 등 권력기관을 정치적으로 남용하는 관행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 때문에 헌법까지 바꿀 필요는 없다.

 정치권에서 ‘제왕적 대통령’의 강조는 분권형 제도에 대한 선호로 이어지고 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역시 오스트리아 식 분권형 대통령제를 언급했다. 그러나 정치권의 분권형에 대한 강조 역시 의심 가는 면이 있다.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정치적 레토릭하에 국회의원들이 자신들의 권력 확대나 권력 참여의 기회를 높이려는 의도는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드는 것이다.

사실 분권형 제도는 더 위험한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 법적 규정으로 대통령과 총리의 권한을 엄격하게 분리해 두더라도 현실 정치에서는 이러한 구분이 그대로 지켜지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나라 제2공화국의 예를 들면, 윤보선 대통령은 장면 총리를 라이벌로 생각했고 군사 쿠데타가 일어났을 때 굳이 이를 적극적으로 제지하려 들지 않았다.

 물론 개헌은 필요하다. 개인적인 입장에서도 현행 헌법은 그동안의 시대적 변화를 충분히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1987년 개정 당시 가장 주된 관심사는 대통령 직선제였고 그 이외의 규정은 대체로 유신 이전, 곧 63년의 제3공화국 헌법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63년과 오늘날의 우리 사회에는 너무도 커다란 변화가 생겨났다. 예컨대 당시 기본권이나 지방 분권에 대한 관심은 오늘날과는 큰 차이가 있다. 5·16 쿠데타 이후 군정 시기에 기초된 헌법이니만큼 당시 사회적으로 충분한 토의와 검토가 이뤄졌다고 보기도 어렵다. 그런 점에서 궁극적으로 현재의 헌법은 바뀌어야 한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이에 대한 충분한 논의도 없이 국회의원들이 자가발전의 형태로 헌법 개정을 이끌고 가려는 것은 온당한 방법이 아니다.

 더욱이 아직까지 헌법 개정에 대한 사회적 합의도 부족해 보인다. 이달 초 보도된 JTBC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63%가 개헌이 필요하다고 했고 21.5%는 필요 없다고 했다. 이것만 보면 개헌 찬성이 압도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개헌이 필요하다는 응답자 중에서도 지금 개헌해야 한다는 응답은 36.4%였고 나중에 해야 한다는 응답은 26.6%였다. 결국 지금이 개헌의 ‘골든 타임’이라고 생각하는 응답자는 36.4%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시급하지 않거나 필요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통치 구조의 방향에 대해서도 25.2%는 4년 중임 대통령제, 21.5%는 현행 5년 단임제, 19.6%는 이른바 ‘분권형 대통령제’, 그리고 7.9%는 내각제를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통치 구조에 대해서도 개정 방향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존재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정치권에서 섣불리 개헌 이슈를 끌고 가려고 하기보다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기본권을 포함한 다양한 개헌 내용에 대해 사회적으로 심도 있는 공론의 장을 마련하고 이로부터 합의를 도출해 내려는 노력이 더욱 중요하다. 특히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하늘을 찌르고 있는 상황에서 정치인들이 개헌을 말하기 전에 국회 개혁부터 나서야 하지 않느냐는 따가운 지적에도 귀 기울일 필요가 있어 보인다.

강원택 서울대 교수·정치외교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