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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없는 장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싱거운 장마도 다 있다. 요즘이 비 없는, 마른 장마철이라니 말이다.
우리 속담에 『장마 도깨비 여울 건너 듯』이라는 말이 있다. 웅얼웅얼 무슨 소린지 모르게 혼잣말을 하는 사람.
얼마나 기다리던 비인데, 이번 장마철이 도깨비 여울 건너 듯 할까 걱정이다.
해마다 이 무렵은 으레 장마가 든다. 옛 시선들은 장마를 매우라고도 했다. 매화나무 열매가 한참 무르익을 때 장마가 찾아온다는 뜻.
흔히 장마철의 기상도를 보면 한우도를 중심으로 중국대륙과 일본열도에 기다란 대가 둘러져 있다.
기상학자들은 그것을 제트기류(Jet stream)라고 부른다. 1947년까지 아무도 몰랐던 기류. 그러나 바로 그해 미국 시카고대학의 기상학자들이 처음으로 제트기류라는 것을 알아냈다.
지구 위도 20도에서 50도 부근에 위치하고 있는 편서풍대. 고도가 10여 ㎞, 평면의 폭이 5백 50㎞내지 1천 l백㎞, 두께가 수천m부터 l만여 m에 이르는 강력한 풍대.
이른바 장마전선은 이 두개의 제트기류 장막 속에서 태평양의 고기압기단과 대륙성 고기압기단이 서로 맞닿는 선을 말한다. 남쪽의 태평양 고기압기단은 바다의 무덥고 축축한 기류를 안고 있다. 북쪽의 대륙성 고기압은 이와는 반대 건조하다.
이 두개의 고기압이 부딪치는 사이로 중국 양자강에서 발생한 저기압이 지나가면 비가 온다. 여름철의 기상은 으레 그렇게 형성되어 왔다. 매실이 익을 때 장마가 진다는 예상도 그래서 할 수 있다.
그러나 요즘의 비 없는 「마른 장마」는 태평양 고기압과 대륙성 고기압은 서로 이마를 맞대고 있는데 문제의 양자강 저기압이 아직 그 사이로 나타나지 않은 것이다. 장마가 건성이냐, 습성이냐는 그 차이다.
이를테면 조물주가 우주라는 목장에 제트기류라는 큰 울타리를 쳐놓고 구름이라는 양떼를 방목하고 있는 경우를 생각할 수 있다. 여기에 저기압이라는 목동이 야생마를 타고 구름을 몰고 다녀야 한다. 그러나 그 목동이 지금 양자강에서 뱃놀이를 하고 있는지, 목장에 나타나지 않고 있는 상황.
어느 기상예보관은 요즘의 천기를 보자기(보)에 비유하고 있었다. 하늘엔 지금 큰 보자기에 비가 가득 들어 있는데 저기압이 나타나 그것을 터뜨리기만 하면 온다는 설명이다. 말은 쉬운데 하늘의 일이라 생각 같지 않다. 오히려 그 보자기에 뜻밖의 구멍이 뚫려 와락 쏟아지는 변이 없을 까도 걱정된다.
아무튼 비는 와야 한다. 우순풍조는 대지만 아니라 우리 마음도 푸르게 해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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