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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딱한 허지웅의 인생론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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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지웅을 아는 사람은 두 분류로 나뉜다. 평론가로 알게 된 사람과 JTBC 예능 프로그램 ‘마녀사냥’으로 알게 된 사람. 각종 사회 현안에 대해 독설을 날리는 진보적 영화 평론가이자 논객이었던 그는 요즘 가는 발목과 성욕 없는 핫한 오빠가 되어 여성들의 모성애를 자극하며 대세로 떠올랐다. 그러나 방송인도 예능인도 아닌 ‘글 쓰는 허지웅’은 변함없이 글을 쓴다. 할 말도 하고 산다. 허지웅은 그냥 허지웅이다. 그를 만나기까지는 꼬박 3개월이 걸렸다. 숱한 설득 끝에 마지막에 온 그의 문자. “옷은 제 옷 입고 갈 테니 상반신 포트레이트 위주로 진행해주세요.” 의도하지 않은 삐딱함과 의외의 친절함, 그리고 생각보다 잘생긴 허지웅을 만났다.

“요즘 대세긴요. 방송이 띄워주는 것뿐이에요”

Q : 대한민국에서 글로 먹고사는 분 중 가장 유명해진 것 같아요

사람들이 많이 알아보긴 하는데 의식하지 않으려고 해요. 삶이 피곤해지니까. 소위 ‘연예인병’이라고 하잖아요. 한때라는 걸 알아서 개의치 않아요. ‘뇌가 섹시한 남자’라는 수식어도 잘 모르겠어요. 라이징 스타를 필요로 하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만들어낸 유행어에 불과하죠. 전 솔직히 ‘뇌섹남’이 무슨 말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Q : 방송이 체질에 맞나요.

출연하는 방송을 선택할 때도 원칙이 있을 것 같아요 방송이 체질에 맞진 않아요. 다만 프로그램 안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있기 때문에 하는 거죠. 제작진에 대한 믿음도 있고. JTBC ‘썰전’의 김수아 PD나 ‘마녀사냥’의 김효민 PD가 저랑 또래인데 아이디어가 정말 많아요. 이런 친구들이 빛을 보니까 그 부분이 제일 좋아요. 방송 쪽은 세대교체가 정말 안 되거든요. 20년 전 스타 PD가 지금도 여전히 스타 PD고. 이렇게 능력 있는 젊은 친구들이 자기 콘텐트를 만들고 대중을 만나서 성공을 거두니까 보람이 느껴지는 것 같아요.

Q : 검색창에 허지웅을 치면 연관 검색어로 ‘눈물’이 나와요. 허지웅이 방송에서 울 줄이야

얼마 전 JTBC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촬영하는데 짝꿍이랑 헤어지는 장면에서 순간 울컥했거든요. 다시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안 하려고요. 나중엔 성질나더라고요. 괜히 가서 애들이랑 정들게 하고 금방 헤어지게 하고. 고문도 아니고, 그게 뭐예요.

Q : 감정 기복이 별로 없을 것 같았는데 의외예요

저요? 완전 일희일비해요. 인간이 어떻게 감정의 기복이 없을 수 있어요. 다만 빨리 차가워지는 편이에요. 얼마 전에는 인터넷 아고라 게시판에 누가 계속 똑같은 글을 올리는데, 제가 2012년에 두 자매를 강간하고 살해하고도 지금 버젓이 TV에 나오고 있다는 내용이에요. 웬만한 악플이면 그냥 넘기는데, 이건 강간과 살인이잖아요. 너무 심했죠. 그래서 신고할까 하다가 그냥 말았어요. 신고해봤자 긁어 부스럼이고, 상대가 정신이 이상한 사람인 것 같은데 그냥 내버려두는 게 낫다고 생각해서 그대로 있어요. 남들보다 상황 컨트롤을 빨리 하는 것 같아요.

Q : 원래 성격이 그런 건가요, 살면서 훈련된 건가요

그렇게 안 하면 못 사니까. 보기보다 상처를 쉽게 받는 편이라 살면서 훈련된 것 같아요. 그렇게 안 하면 모두가 내 적인 것 같고, 나만 못살게 구는 것 같고, 다 내 안티 같고 해서 못 살아요. 마음에 굳은살이 밴 거죠.

Q : 그럼에도 악플에서 자유롭지 못하네요

저는 주로 현상에 대해 진단하지 댓글은 안 봐요. 정신 건강에 해롭거든요. 알려진 사람들에게 금기시되는 철칙이 있어요. ‘자기 이름을 절대 검색해보지 말 것!’ 이건 정말 불문율인 것 같아요. 지옥의소용돌이에 빠지는 거니까. 다만 저를 향한 비난은 좋은데, 그렇게 말하는 분들은 얼마나 떳떳한지 묻고 싶어요.

저는 모든 인간은 모순적이고 흠결투성이라고 생각해요. 자신의 흠결을 들여다보고 객관적으로 파악하지 못하는 사람은 그 어떤 분야에 대해서도 고쳐나가야 할 필요성을 못 느껴요. 남의 흠결을 공격하는 데에만 혈안이 돼 있죠. 그래서 저는 제가 제일 별로라고 말하고 다녀요. 너도 사실 별로라고 말하려고요.

Q : 열정과 냉정 사이에서, 지웅씨는 후자의 성향이죠

냉정보다는 냉소적인 사람이죠. 사실 냉소는 제가 세상을 살아가는 데 가장 편리한 방법 중 하나예요. 글 쓰는 사람들에게는 냉소적인 태도가 객관성을 담보해주고요. 뜨겁고 충만할 때보다 냉소적일 때 했던 말과 글이 더 오랜 시간 유효하기도 하고요. 물론 열정 좋죠. 모든 서사의 시작은 뜨거움인데. 체 게바라가 왜 계속 체 게바라겠어요. 죽음까지도 뜨겁거든. 근데 그렇게 뜨거운 체온으로 응원하는 이들은 대개 시간이 지나면 잘못된 계통이 많더라고요. 돌이켜보면 그렇게 동의될 만한 일이 아니었고, 과정에 문제도 많았고. 그래서 저 스스로는 뜨거움의 마술에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Q : 평범하게 사는 게 참 힘든 세상인 것 같아요

엄청 어렵죠. 평범한 게 어려울 수밖에 없는 게 가장 보통의 삶, 가장 평범한 인간상이 사실 없기 때문이에요. 어떤 아이콘적인 부분이 있으면 쫓아갈 수도 있을 텐데, 그런 삶을 살기가 불가능한 사회가 아닌가 싶어요. 이제는 개별의 것들로 수렴되고 있으니까. 저는 그게 마음 편하긴 한데, 막상 모든 게 다 개별적인 것들로만 수렴되는 사회가 과연 지속 가능한 건강한 사회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저 자식 아직도 쓰고 있네 할 때까지 계속 쓸 거예요”

Q : 올해 벌써 두 번째 낸 책이에요

지난 3월에 나온 소설『개포동 김갑수씨의 속사정』은 마음먹고 나서 쓴 소설이고, 이번에 나온『버티는 삶에 대하여』는 그간 신문과 잡지에 연재한 칼럼과 개인적으로 새로 쓴 글들을 엮어서 낸 에세이예요. 사실 이번 책은 낼 생각은 없었어요. 단출해서. 십몇 년 동안 계속 글을 써온 사람이고, 혼자 글을 쓰는 것도 아니고, 계속 연재하고 활동하고 어찌 됐든 퍼블리싱을 해오는 사람인데, 저를 단순히 TV에 나오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이쯤에서 한 번 짚고 넘어가야겠다 싶더라고요. 마음도 다잡고. 나는 원래 글 쓰는 사람이다, 이런 걸 보여주고자 해서 책을 냈어요.

Q : 책을 보고 위로받았다는 반응이 많아요

그런 반응을 하는 게 고맙다고 표현하는 건 약간 간지러운 것 같고, 그냥 좀 놀라워요. 솔직히 저는 위로하려고 쓴 글이 아니거든요. 타인을 위로하는 건 기만이라고 생각하는 주의라. 물론 좋은 의도로 하는 분들도 있지만요. 그런데 만약 이 책이 그런 역할을 했다면 ‘되게 다행이다’라는 생각을 해요.

Q : 지웅씨의 글은 건조한데 읽으면 슬프고 뜨거워져요

저는 글이 다루고 있는 소재에 따라서 전략을 다 다르게 가져가요. 제 얘기를 할 때는 남 일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고요. 내 일과 내 인생에 너무 몰입해서 함몰돼버리면 엉뚱한 글이 나오고 혼자만 뜨거워질 수 있거든요. 아무도 공감할 수 없는 거죠. ‘얘는 왜 이래, 오버해, 자기 혼자 힘들어?’ 이런 반응이 나오고요. 근데 저는 워낙 제 일이 남 일 같아서 ‘욱욱’ 해서 화나는 일들은 있는데, 그래도 한편으로는 남 일처럼 쭉 쓰는 게 재밌어요. 내 얘기를 남 얘기처럼 쓴 글을 읽고 사람들이 웃고 우는 게 좋아요.

Q : 원래 꿈은 뭐였나요

글 쓰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뿐, 다른 직업은 생각해본 적 없어요. 글 쓰는 사람이 되려고 습작을 하거나 훈련을 한 건 아니지만, 글 쓰는 일이 제 생활과 늘 맞물려 있었던 것 같아요. 생계랑 연관돼 있다 보니 일찍부터 글을 쓰게 됐고요. 제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기도 했고, 주변에서 돈을 주면서 ‘글 써달라’고 찾아주니까 자연스럽게 제 밥벌이가 됐어요.

Q : 좋은 글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저는 어찌 됐건 읽혀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도 남이 제 글을 읽는 순간을 제일 고려하면서 쓰거든요. 그래서 소재에 따라 전략을 세우죠. 단문으로만 갈 건지, 단문 3번에 장문 1번으로 갈 건지, 문단을 띄울 건지 전략을 세우는데, 저는 상대방이 읽을 때 박자감을 제일 많이 고려해요. 그래서 글을 쓰고 나면 반드시 소리 내서 읽어봐요. 그래야 어떤 박자로 읽히는지 알게 되고 비문도 잡히고요.

Q : 글 쓰는 강의는 안 하세요

옛날에 글쓰기 강좌를 했었는데 그 뒤로는 안 해요. 글쓰기는 본인의 스타일을 찾는 게 가장 중요한 거거든요. 지금 이렇게 말하는 것도 사실 내 스타일이고. 남들한테 다 나처럼 쓰라고 할 순 없잖아요.

Q : 글 쓰는 직업을 꿈꾸는 누군가에겐 지웅씨가 우상일 텐데요

멘토, 멘토링, 힐링. 이런 걸 좇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자기들에 대한 담론을 왜 외부에서 찾아요? 아무것도 묻지 말고 듣지 말고, 자기 인생을 자기 뜻대로 살아가면 좋겠어요. 그렇게 부딪히고 넘어지고 배워야 진짜죠.

Q : 요즘같이 바쁠 때, 글은 언제 쓰나요

주로 밤에 써요. 늘 갖고 다니는 수첩에 하고 싶은 얘기나 생각들을 적어놓고 어떤 구성으로 할 건지 메모해둔 다음, 그거 보면서 쓰죠. 또 점심 먹기 전 1시간~1시간 반 정도 컴퓨터 앞에 앉아 있어요. 꼭 글을 쓰지 않아도, 그냥 멍 때리고 있더라도 꼭 앉아 있는 습관을 들여요. 그건 매일 해야 하는 것 같아서요.

Q : 글을 써야 한다는 강박이 있는 거 아닌가요

강박? 글쎄요. 그것보다는 저는 글로 안 쓰면 정확하게 이해가 안 돼요. 내가 지금 생각하는 것과 이해하고 있다고 믿는 것들을 정확하게 문장으로 써야지 완전히 내가 아는 게 돼요. 그게 아니면 어설픈 인상 비평에 불과해요.

Q :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에서 조인성씨가 허지웅씨를 모델로 연기했다고 해서 화제가 된 적이 있어요

작가님이 염두에 두고 쓴 건지 모르겠지만, 조인성씨는 저를 모델로 연기한 게 맞다고 하더라고요. 글 쓰는 직업, 말투, 결벽증, 트라우마 등. 솔직히 요즘 세상에 정신병 없는 사람이 어디 있나요. 강박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고. 제가 갖고 있는 강박증은 정리, 청소, 약속 시간이에요. 남들이 늦는 건 좀 짜증 나긴 해도 이해할 수 있는데, 제가 늦는 건 용납할 수 없어요.

Q : 나이 들면서 변하는 부분도 있지 않나요

저는 기본적으로 ‘사람은 안 변한다’ 주의예요. 본연의 스타일이나 성격은 절대 안 변한다고 생각해요. 누구를 만나고 친하게 지내면서 맞춰나가는 건 대화의 기술과 태도의 차이지, 옛날에 이랬던 애가 이렇게 변했다는 건 말이 안 되는 것 같아요. 어떤 순간에 어떤 모습이 튀어나오느냐의 문제인 거죠.

Q : 허지웅의 뇌 구조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건 뭘까요

책임지는 거요. 같이 하는 게 보람 있고 같이 이뤄가는 게 정말 좋지만, 그럼에도 방송은 저한테 스트레스거든요. 그런데 제가 지금에 와서 발을 빼면 서로 힘들어지잖아요. 같이 벌여놓은 일인데 결국은 내가 책임을 지지 않는 거니까. 그래서 내가 책임져야지, 만날 남들한테만 책임지라고 하지 말고 나부터 잘해야지 하고 마음을 다잡고있어요. 저에게는 책임이 가장 큰 과제인 것 같아요.

Q : 요즘 빠져 있는 건 뭐예요

원래 모으는 걸 좋아해서 피규어를 계속 모으고 있고요. 새로운 피규어를 모으는 데 다시 빠져 있죠. 해외 아이디어 소품, 디자인 소품들에도 관심이 많아요. 기업에서 파는 것 말고, 개인이 파는 소품이오. 그런 사이트에 들어가서 이것저것 사는 편인데, 여기에 쓴 돈만 몇 천만원이에요. 지금 이 피규어 때문에 이사 가야 할 형편이에요. 핥핥핥.

Q : 오늘, 지금 이 순간 행복하자는 주의인가 봐요

반반인 거 같아요. 너무 현실에만 안주하는 쾌락주의자도 가만 보면 라이프스타일이 좀 무책임하더라고요. 다 그렇진 않겠지만 내가 겪어본 사람들은 대부분 그래요. 그래서 안 그러려고, 반반씩 하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그 나머지 반을 위해 투자하는 걸 너무 몰라서 큰일이에요. 홍석천 형을 비롯해 많은 부동산업자에게 조언을 구하고 있어요.

Q : 그동안 재테크는 어떻게 했어요

아무것도 안 했어요. 주변에서 추천하는 게 은행에서 돈을 빌려서 집을 사고 그걸 갚아나가면, 나중에 돈이 많이 쌓여 있대요. 공통적으로 그렇게 얘길 해요. 근데 빚지고 사는 걸 안 해봤기도 하고 병적으로 싫어해서, 꼭 그렇게 하면서까지 돈을 모아야 하나 싶어요. ‘바보들을 위한 부동산 투자’ 같은 책이라도 읽어봐야 하나? 근데 저는 제가 일한 만큼 성실하게 쌓인 돈이 좋아요. 그래야 돈이 귀한 줄 알죠. 자꾸 사람들이 돈으로 돈 버는 맛을 들이다보니 금융 위기 오고,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는 거예요. 정답이 뭘까요….

Q : 피규어를 덜 사면 될 것 같아요(웃음). 지웅씨가 스스로 인정하는 부분은 뭐예요

미감이 좋다는 거요. 뭐 해놓으면 괜찮다고 하더라고요. 정리가 됐든 디자인적인 부분이 됐든 패션이 됐든. 미감이 나쁘지 않은 거 같아요. 무엇보다 나한테 뭐가 잘 어울리는지, 그리고 내 공간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그런 것들을 잘 아는 것 같아요. 방송 하면서도 남의 옷을 입은 적은 한 번도 없어요. 전부 제 옷이죠. 초반에 ‘썰전’ 때문에 남의 옷 한두 번 입어봤는데 못 입겠더라고요.

Q : 옷은 주로 어디서 사나요

인터넷 쇼핑몰에서도 사고 동네에서도 사고. 여기저기서 사요.

Q : 지금 나를 웃게 하는 것은요

요즘 몸이 갑자기 안 좋아져서 그 좋아하는 술을 못 먹고 있는데, 다시 음주하게 되는 그 순간을 상상하니 기쁨과 설렘에 미소가 절로 지어지네요. 핥핥핥.

Q : 근데 건강은 얼마나 안 좋은 거예요

만성 피로예요. 한번은 갑상샘 저하증 진단을 받아서 수술해야 하나 고민했는데, 수술하면 눈 튀어나온다고 해서 버텼어요. 그러다 다른 병원에 갔더니 갑상샘 저하증은 과잉 진단이라고, 그냥 만성 피로라고 하더라고요. 수술해서 눈 튀어나왔으면 어쩔 뻔했어요.

아무튼 간이 심각하게 안 좋은 상황이에요. 종합 검진을 받아야 하는데 시간도 없고 귀찮아서 각종 보양식으로 버티고 있어요. 홍삼과 우루사. 병원에서 처방받은 우루사가 따로 있는데 효과 짱이에요. 기자들이 마감할 때 두 알씩 먹으면 좋을 것 같아요. 우리 술꾼들은 우루사 두 알하고 컨디션(혹은 여명)을 같이 먹어요. 다음 날 개운해요. 완전 우루사 간접 홍보네요. 우O사라고 하던가. 핥!

“말 통하고 가슴 크고 골반 큰 여자가 좋아요”

허지웅은 여자의 이상적인 골반 모양과 속궁합에 대해 말하면서도 “나는 성욕이 없다”고 주장한다. 허지웅이기에 가능한 모순이다.

Q : 한동안 ‘무성욕자’ 캐릭터였잖아요

방송에서 한 말이 와전된 거예요. 제가 말한 성욕은 ‘연애의 의지’였거든요. 성욕 없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저는 성욕이 없다기보다 ‘연애 고자’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것 같아요.

Q : 연애를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한다는 의미인가요

이혼한 뒤로 연애를 해도 점점 ‘해봤자 뭐하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아직 사람을 사귈 수 있는 정신 상태가 못 되는 거 같아요. 두 달 있으면 서른일곱이라 그냥 섹스나 하려고요.

Q : 연애할 때 허지웅은 어떤 모습이에요

객관적이기 위해 노력하는 편이에요. 초반에 삐걱거리거나 흔들리는 연애를 들여다보면, 그 이유가 대개 너무 뜨겁기 때문이거든요. 나는 100만큼 사랑하는데 왜 넌 10밖에 사랑하지 않느냐고, 자기감정에 사로잡혀서 타박하는 거죠. 연애야말로 가장 객관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참 힘든 것 같아요.

Q : 내 여자한테만 잘할 것 같아요

내 여자한테라도 잘하면 좋은데 그런 인간이 별로 못 돼요. 잘하는 기준이 뭔지 모르겠지만. 근데 적어도 난 그 사람에 맞게 노력을 많이 해요. 안 그러면 나중에 후회를 많이 하거든요. 많이 표현하면 쉬워 보일까 봐 조금만 사랑하고 조금만 표현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건 없다고 생각해요. 연인 사이에 제일 쓸모없는 게 ‘밀당’인 거 같아요. 저는 영원한 사랑은 없다고 생각하는 주의라 사랑할 땐 100만큼 충실해야 한다고 봐요. 안 그러면 나중엔 100만큼 안 한 것 때문에 틀림없이 헤어지는, 어리석은 순환 고리에 빠지게 돼요.

Q : 여자의 어떤 매력에 끌리나요

말 통하고 예쁘고 가슴 크고 골반 큰 여자요. 살이 찌고 안 찌고는 크게 신경 안 쓰는데 비만은 병이니까 가급적이면 (병을) 고치는 게 좋죠. 말 통하는 게 가장 중요해요. 말만 통하면 가슴이 작아도 충분히 매력적으로 보이거든요. 예를 들어 어떤 이슈에 놓고 대화를 하는데 제가 1357을 얘기할 때 상대가 2468을 말하면 정말 좋죠. 내가 10을 전부 말하지 않아도 맥락을 파악하고, 혹은 더 깊게 12, 13까지 얘기하는 친구들. 그러면 내가 얘기하려는 진의에 대해 무지하게 노력하지 않아도 잘 통하겠다는 생각이 들죠. 그런 스타일의 여성과 대화할 때 놀라게 되는 지점들이 있어요. 그 순간 무지하게 섹시하죠.

Q : 과거의 경험으로 인해 결혼관이 바뀐 부분이 있을까요

결혼은 판타지가 아니라는 것, 책임지는 것, 그러니까 책임지지 못할 일은 최대한 만들지 말아야 하는 것. 이건 제 삶의 모토이기도 해요.

Q : (이혼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는 것 같아요

서로의 인생에서 무엇보다 중대한 결정이고 결심이었는데 결과적으로 책임지지 못했고 그게 관계의 파행으로까지 갔으니까요.

Q : 재혼 가능성은요

없어요.

Q : 동거는요

상황이 맞으면 하죠. 근데 어느 한쪽이 자신이 갖고 있는 신념이나 윤리 의식에 거대한 도전을 하는 거라든가, 삶에서 엄청난 결단을 해야 하는 수준의 가치관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 동거를 강요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서로 가치관이 맞으면 동거는 얼마든지 해도 좋아요. 물론 배려가 전제되어야 하고요.

Q : 그렇다면 책임질 수 있을 때 재혼 가능성은요

실패한 건 다시 안 하고 싶어요.

그와의 인터뷰는 2시간 동안 이어졌다. 분명 허지웅의 인생사를 듣기 위해 만난 자리였는데, 그의 인생 너머로 어느덧 기자의 개인사를 고백하고 있었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리고 기자의 이야기를 하면서 위로받았다.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고 집중하는 자세와 적당히 까칠하면서도 진지한 태도는 상대로 하여금 모든 것을 오픈하게 했다. 이는 그의 성격이고 성향이고 장점이고 매력이지만, 그가 삶을 대하는 태도이기도 할 것이다.

『정글북』의 작가 러디어드 키플링은 아들에게 주는 편지에서 “인생의 비밀은 단 한 가지, 네가 세상을 대하는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세상도 너를 대한다는 것이다. 네가 세상을 향해 웃으면 세상은 더욱 활짝 웃을 것이요, 네가 찡그리면 세상은 더욱 찌푸릴 것이다”라고 말했다. 허지웅은 그 인생의 비밀을 안 사람 같다.

취재=정은혜 여성중앙 기자, 사진=박지홍(cao 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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